건물 관리비 사용으로 고소된 남자, 법원 “공금 증명 안 돼 무죄”

관리비 계좌에서 돈을 인출했다는 이유로 횡령 혐의를 받은 남자. 하지만 법원은 “공금임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Oct 29, 2025
건물 관리비 사용으로 고소된 남자, 법원 “공금 증명 안 돼 무죄”

1. 오래된 건물의 ‘관리인’

서울 동작구의 한 4층짜리 건물.
이 건물은 여러 명의 공동소유자(공유자)가 함께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공유자들은 오랫동안 건물 유지·보수를 맡아줄 사람을 찾았고,
2007년부터는 그 건물에 세입자로 살고 있던 A씨에게 그 일을 맡겼습니다.

A씨는 건물의 지하층과 1층을 임대해주는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임대차 계약, 월세 수금, 공과금 정산까지 모두 A씨의 몫이었습니다.
공유자들도 믿고 맡겼습니다.

그런데 13년이 지나, 이 오래된 신뢰 관계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2. “공금 1,500만 원을 빼돌렸다”는 의혹

2020년, 공유자 중 한 명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관리비 계좌에 돈이 줄어들었어요. 1,500만 원이 빠졌습니다.”

조사를 해보니 A씨가 관리비 계좌에서 그 돈을 인출해
‘개인 채무를 갚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공유자들은 격분했습니다.
“그 돈은 우리 건물의 공금이잖아요. 개인 돈이 아니잖아요!”

결국 A씨는 업무상 횡령죄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3. 검찰의 주장 — “공금에서 쓴 게 분명하다”

검찰은 명확했습니다.

“피고인은 건물 관리비를 자신의 개인계좌로 받아 관리했으며,
그 중 1,500만 원을 개인 채무 상환에 사용했다. 이는 명백히 공금 횡령 행위다.”

A씨가 공금과 개인 자금을 한 계좌에 섞어둔 것은 맞습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공금이 섞여 있는 계좌에서 인출한 이상, 그 돈은 공금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4. 법정에서 벌어진 진실 공방

하지만 재판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A씨 측은 “그 돈은 내 돈이었다”고 맞섰습니다.

“계좌에는 제 개인 돈과 관리비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빌려 쓴 돈을 갚았을 뿐, 공금에는 손대지 않았습니다.”

또한, 관리비 계좌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고,
공유자들에게는 수입·지출 내역을 비정기적으로 보고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정확히 얼마가 공금이고 얼마가 개인 돈인지’를 구분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5. 법원의 판단 — “공금인지 증명되지 않았다”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① “공금인지 명확하지 않다”

법원은 검찰의 주장처럼 단순히 ‘공금이 섞인 계좌에서 인출했다’는 이유만으로
불법영득의 의사를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공금과 개인자금이 혼재된 계좌에서 출금된 돈이
실제 공금이었는지 여부가 증명되지 않았다면,

이를 공금을 횡령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검찰은 A씨의 계좌에서 빠져나간 1,500만 원이 공금이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계좌 잔액을 비교해보면
출금 후에도 공금으로 보이는 금액(약 1,369만 원)이 남아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즉, 빠진 돈이 꼭 공금이었다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② “증거로는 유죄 입증 불가”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공금을 빼돌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유자들에게 정기적으로 회계 보고를 하지 않았다거나,
공금 계좌를 따로 두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불법영득의 의사를 인정할 수는 없다.”

결국 법원은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6. 판결의 결론

“피고인이 사용한 1,500만 원이
공금이 아니라 개인자금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7.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판결은 공금과 개인자금이 섞인 계좌에서의 출금 행위에 대한
형사책임의 한계를 명확히 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법원은 “공금으로 단정할 수 없는 자금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횡령죄가 성립할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공금의 존재와 사용의 불법성을
검사가 명확히 입증하지 못하면,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즉,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이 다시 한번 확인된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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