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실적 쌓기라 믿은 일,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법원 “과실은 있어도 고의는 없다”

대출 거래 실적을 쌓는 일이라 믿고 돈을 인출한 남성이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과실은 인정돼도 고의 입증 안 되면 유죄 불가”
Oct 22, 2025
대출 실적 쌓기라 믿은 일,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법원 “과실은 있어도 고의는 없다”

사건 개요

2018년 2월, 부산의 한 40대 남성 A씨(피고인)
전화로 낯선 사람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신용등급이 낮아 바로 대출이 어렵습니다.
대신 거래실적을 쌓아야 하니,

계좌로 돈을 보내드리면 인출해 우리 직원에게 전달해주세요.”

이 사람은 자신을 대부업체 직원 ‘B 실장’이라고 소개했습니다.
A씨는 예전에 체크카드를 타인에게 빌려줬다가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되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실적 쌓기용 작업대출”이라는 말에 속아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사건의 흐름

‘B 실장’의 말에 따라 A씨는 자신의 은행 계좌번호를 알려줬습니다.
그런데 이 계좌는 곧 보이스피싱 피해금 입금 계좌로 사용됩니다.

같은 날,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피해자 E씨에게 전화를 걸어
“기존 대출을 갚으면 3,000만 원까지 추가 대출이 가능하다”며 속였습니다.

피해자는 안내에 따라 A씨 계좌로 1,000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잠시 뒤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E라는 고객이 돈을 보냈으니 인출해 직원에게 전달하라.
은행 직원이 물으면 부동산 대금 지급이라고 해라.”
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A씨는 은행에서 보이스피싱 예방문진표를 받았지만,
거짓으로 “해당 없음”에 표시를 하고 현금을 인출했습니다.
그리고 은행 근처 노상에서 낯선 사람에게 돈을 건넸습니다.

검찰은 A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인출책 역할을 했다사기방조죄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과거 전력도 있고, 고의가 있었다”

검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A씨의 사기방조 고의를 주장했습니다.

  1. A씨는 과거에도 계좌를 빌려줬다가 보이스피싱 사건에 연루된 전력이 있었음.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낯선 사람의 제안을 받아 계좌를 제공함.

  3. 은행의 보이스피싱 예방문진표에도 거짓으로 답변하고 돈을 인출함.

따라서 “보이스피싱에 이용될 것을 알면서도 돕거나 최소한 용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그냥 대출 조건 맞추는 작업인 줄 알았습니다”

A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저는 대출 실적을 쌓는 ‘작업대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출을 받기 위한 절차 중 하나로 믿었지, 사기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거래를 통해 실제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으며,
지시받은 대로 인출하고 전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과실은 있으나 고의는 없다”

부산지방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① 피고인의 행위는 ‘속은 결과’에 가깝다

법원은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사기범과 나눈 카카오톡 내용 등을 보면
A씨가 ‘대출을 위한 거래실적 쌓기’라는 말에 속아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즉,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될 것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② 예방문진표 거짓 작성은 ‘과실’일 뿐

법원은 A씨가 은행에서 받은 보이스피싱 예방문진표에 거짓으로 체크한 점은 인정했지만, 이는 단순한 부주의(과실)일 뿐 ‘사기방조의 고의’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에게 과실이 있었음은 명백하지만,
범죄를 돕겠다는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③ 과거 전력만으로는 고의 입증 불가

A씨가 과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실은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같은 의도를 가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봤습니다.

법원은 “단순히 전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의성을 추단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론: “사기방조죄는 ‘의도’가 입증돼야 한다”

“피고인은 사기범의 말에 속아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과실은 있지만, 사기방조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2항에 따라 무죄판결의 요지를 공시했습니다.


사건의 의미: “고의와 과실의 경계선”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관련 계좌 명의자가 무죄를 받은 드문 사례입니다.

보이스피싱 사건에서는 일반적으로 “계좌 제공자”에게도
방조죄 또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죄가 적용되지만,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고의가 없는 단순 과실”로 구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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