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개요
피고인은 지인들과 술을 마시던 중, 술에 취한 여성을 모텔로 데려갔습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인 점을 이용해 간음했다며 준강간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또한, 같은 날 피해자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혐의(카메라등이용촬영)도 함께 기소되었습니다.
법원은 준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
몰래 촬영한 혐의에 대해 벌금 300만 원형을 선고했습니다.
사건의 흐름
술자리에서 모텔로
2014년 4월, 피고인은 지인 H, 피해자 E 등과 함께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1차 식당, 2차 노래방을 거친 후, 지인 H가 먼저 자리를 떠나자
피해자는 식당 앞에서 술에 취해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피고인이 “모텔에 가서 좀 쉬다 가라”고 권유하며 피해자를 모텔로 데리고 갔습니다.
피해자는 모텔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잠들었고,
검찰은 피고인이 이 틈을 타 피해자를 강제로 간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해자의 주장
피해자는 “술에 취해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
피고인이 강제로 옷을 벗기고 간음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피해자의 말에 따르면
당시 눈물이 났고 반항했지만 힘이 빠져 저항하지 못했다,
이후 급히 옷을 입고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자의 동의 아래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 “항거불능 상태 입증 부족”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낮고,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며 준강간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피해자의 진술이 비합리적
피해자는 “지인 H가 곧 온다 해서 안심하고 모텔에 갔다”고 했지만,
피고인이 H와 아무 상의 없이 방을 잡았다는 점에서 진술의 개연성이 낮다고 보았습니다.
(2) 주변인 진술과 불일치
식당 주인과 종업원은 “피해자가 많이 취하지 않았고 걸어서 나갔다”고 진술,
모텔 업주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며 방으로 들어갔다”고 진술했습니다.
→ 즉,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로 보이지 않았다는 객관적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3) 지인 H의 통화 내용
피고인은 모텔로 가기 전 H에게 전화를 걸어
“피해자가 따라왔다, 마음에 든다”고 말했고,
이에 H는 “알아서 해라”고 답했습니다.
이 대화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속이거나 납치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동의 하에 모텔로 간 것일 가능성을 뒷받침했습니다.
(4) 진술의 변화
피해자는 초기에 “밀치고 도망쳤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피고인이 계속 잡아당겼다”고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사후 보강된 진술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5) 문자 메시지 내용
간음 후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에는
‘사진·촬영 여부’에 관한 언급은 있었지만
성관계나 폭행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습니다.
법원은 “피해자가 즉시 항의하지 않은 점”도 신빙성을 약화시키는 요소로 봤습니다.
결론
“피해자의 진술만으로는 준강간의 구성요건인 ‘항거불능 상태’와 ‘간음행위’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
법원은 준강간 혐의는 무죄,
다만 피해자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부분은 명백하므로
성폭력처벌법 제14조(카메라등이용촬영) 위반으로 벌금 300만 원형을 선고했습니다.
또한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이수 명령도 함께 내렸습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피해자 진술 중심 수사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입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경우,
법원은 진술의 일관성·합리성·객관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합니다.
조금이라도 모순되거나 상황상 개연성이 부족하다면,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술에 취했다는 사정만으로는 ‘항거불능’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습니다.
결국 이 판결은
“피해자의 진술은 중요하지만, 오직 그것만으로는 유죄를 입증할 수 없다.”
는 형사재판의 증명원칙(검사의 입증책임)을 다시 확인한 사례입니다.
이 사건은 ‘술자리 후 발생한 성관계’에서
동의와 항거불능의 경계가 얼마나 섬세한지를 보여줍니다.
법원은 감정적 판단이 아닌,
정황·진술·증거를 종합한 객관적 분석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성범죄 사건에서의 핵심은 “진술의 신빙성”입니다.
피해자가 진심으로 느낀 공포와 거부의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법적 구성요건(항거불능 상태, 폭행·협박 등)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유죄를 선고하기 어렵습니다.
이 판결은 “진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냉정한 현실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증거 중심의 형사사법 원칙을 지켜낸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