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을회관에서 벌어진 논쟁
2022년 1월 14일 저녁 6시, 상주시의 한 마을회관.
마을 결산을 위해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주민 A씨가 당시 이장이었던 L씨에게 물었습니다.
“불특정한 사람한테서 받은 30만 원, 그 돈 어디로 간 겁니까?”
이 말이 곧 “이장이 30만 원을 중간에서 빼돌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며,
L씨는 명예훼손이라며 고소했습니다.
2. 검찰의 주장 — “공연히 허위사실을 퍼뜨렸다”
검찰은 A씨가
“마을회관에서 주민 다수가 모인 자리에서 이장이 기금을 유용했다고 말해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저질렀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A씨는 “나는 단지 마을기금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을 뿐,
허위사실을 말한 적도, 명예를 훼손할 의도도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3. 법정에서 드러난 사실들
재판에서는 당시 현장에 있던 주민들의 진술이 엇갈렸습니다.
피해자 L과 일부 주민은 “A씨가 ‘이장이 3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주민들은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A씨가 실제로 마을기금의 장부·사용내역 공개를 요구하며 논쟁하던 상황이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했습니다.
4. 법원의 판단 — “공금 사용을 따진 질문일 뿐”
① ‘30만 원’ 발언의 의미
법원은 “A씨가 30만 원 발언을 했다는 점은 일부 인정되지만,
그 취지는 마을기금 사용내역을 확인하려는 질문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이장으로서 특정인으로부터 받은 돈을 문제 삼은 것이 아니라,
전체 마을기금의 사용내역을 확인하려는 과정에서 30만 원을 언급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마을 내에는 실제로 여러 주민과 기업이 기부금 형태로 돈을 낸 사실이 있었고,
피고인의 발언은 “구체적 횡령 사실”을 단정하기보다는
“기금 사용을 공개하라”는 요구의 연장선으로 해석됐습니다.
② 명예훼손의 고의 없음
법원은 대법원 판례(2018도4200)를 인용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자 질문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을 하였다면,
그 동기에 비추어 명예훼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A씨는 실제로
마을총무와 노인회장도 과거 회계내역에 의문을 품고 있었고,
마을의 공공자금 사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기에
“이장에게 공개를 요구한 것은 공공의 이익에 관한 행위”라고 판단되었습니다.
③ 이장의 대응 태도도 고려
L씨는 법정에서 “마을통장과 장부를 모두 보관 중이며,
이 내용을 경찰에 소명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법원은 “그렇다면 피고인의 발언은 허위사실 유포가 아니라
자료 공개를 거부하는 이장을 향한 항의에 불과하다”고 덧붙였습니다.
5. 결론 — “범죄의 증명이 없다”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명예훼손의 고의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에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따라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또한 형법 제58조 제2항에 따라 무죄 판결 요지를 공시했습니다.
6. 판결의 의미 — “비판과 질문의 자유”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공익적 문제 제기와 명예훼손의 경계를 명확히 한 판례입니다.
법원은 “주민이 마을기금 사용에 의문을 제기하는 행위는
정당한 공익적 발언으로 보호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비판적 발언이라도,
사실 확인과 공익 목적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