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피하려고 준 400만 원, 그래도 배임수재가 아닌 이유

회수·재활용 실적조사 과정에서 업체로부터 400만 원을 받은 직원. 하지만 왜 배임수재와 업무방해 모두 무죄가 되었을까? 부정한 청탁의 기준과 배임수재 성립요건을 판례로 쉽게 설명합니다
Nov 27, 2025
제재 피하려고 준 400만 원, 그래도 배임수재가 아닌 이유

1. “해지되지 않도록 좀 도와달라”… 그리고 400만 원

피고인 A는 공익법인 C의 본사 E팀 팀장으로
회수·재활용 위탁업체에 대한 실적관리·조사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었습니다.

2017년, F·W 업체의 허위 실적 제출이 적발되면서
C는 관련 업체들에 대한 제재 여부를 심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W(회수·선별업체) 대표 B는 피고인을 만나
“우리 회사가 계약 해지가 되지 않도록 잘 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후 실제로 제재는 ‘경고’ 수준에 그쳤고,
피고인은 B 및 그 지인 I로부터 현금 400만 원을 받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부정한 청탁 대가’처럼 보입니다.

검찰도 바로 그 점을 근거로

  • 배임수재

  • 업무방해(허위 보고서 작성)

을 적용하여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결론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2. 배임수재가 되려면 뭐가 필요한가?

핵심 요건은 단 하나입니다.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금품을 받았는가?”

청탁은 명시적이어도 되고,
묵시적이어도 되지만,
다음 두 요소가 분명해야 합니다.

  1. 청탁 내용이 사회상규에 반해야 하고

  2. 제공된 금품이 그 청탁의 대가라는 점에 대해
    **상호 인식(공통의 양해)**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그 인식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3. 법원이 본 핵심 사실 — “청탁은 있었을지 몰라도, 대가성은 증명 안 됐다”

첫째, B의 진술 자체가 ‘청탁 승낙’을 증명하지 못함

B는 “해지되지 않도록 잘 봐달라”고 말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피고인이 그 청탁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은 없음.

오히려,

  • 피고인은 “해지 가능성이 높다”고 여러 차례 말했고

  • 이후에는 연락도 잘 받지 않았다는 진술이 존재

  • 지인 I도 “피고인이 해지될 것 같다고 했다”고 진술

피고인이 청탁을 수락한 정황이 전혀 없음.


둘째, 피고인은 제재 결정권자가 아니었음

C의 제재 수위는
변호사·회계사·환경공단·C 임원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피고인은 단순히 실무자료를 작성·보고하는 위치였을 뿐
제재 수위를 바꿀 권한 자체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피고인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3개월 해지’ 의견이 포함되어 있었고,
심의위원회는 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경고로 감경해 결정했습니다.

피고인이 무언가를 해 준 정황은 전혀 없었습니다.


셋째, 금액도 대가성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음

검찰은 “400만 원은 경고 조치의 대가”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오히려 이렇게 보았습니다.

  • 피고인은 평소 여러 업체들로부터
    ‘작은 금액’의 금품·향응을 받아온 사실이 있음

  • 이번 400만 원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고

  • 해지를 막아서 생기는 업체의 이익에 비해
    대가라 보기에는 지나치게 작은 금액

‘감사 인사’ 수준의 금전일 가능성이 훨씬 높았습니다.


4. 업무방해 혐의도 왜 무죄인가?

검찰은 피고인이 허위 소명자료임을 알면서도
W에 유리한 허위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다음 사실들을 근거로 모두 배척했습니다.

  • W는 지속적으로 “허위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 F(재활용업체)도 W의 주장에 맞춰 의견서를 제출

  • C 내부에서도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치며 판단을 유보

  • W는 CCTV·통행내역 등 추가자료도 일부 제출

  • 피고인이 허위라는 점을 인지했다는 증거 전혀 없음

  • 제재는 심의위원회가 독자적으로 결정

따라서 피고인의 보고서가
‘허위임을 알고 작성한 것’이라고 볼 근거가 없음.

업무방해 역시 무죄.


5. 결론 — 배임수재도, 업무방해도 모두 무죄

결국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 부정한 청탁과 금품 사이의 대가성 ‘입증 실패’ → 배임수재 무죄

  • 허위 인식 증명 실패 → 업무방해 무죄

형사재판의 대원칙대로
**“의심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준이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번 사건은 단순히 돈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배임수재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금품 제공자와 수령자 모두가 그것을 ‘청탁의 대가’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하고, 그 인식이 명확하게 입증되지 않으면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또한 피고인이 실적조사 과정에서 특정 업체를 봐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허위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주장도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실제 제재는 심의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했으며, 피고인의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판결은 배임수재·업무방해는 고의가 명확히 입증되어야만 성립한다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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