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차 안에서 벌어진 10초의 오해
늦은 밤, 퇴근 시간대가 지난 노량진역 하행선.
술자리를 마치고 전동차에 오른 한 남성은 다소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지하철에 탑승했습니다.
그는 봉을 잡고 서 있다가, 주변 좌석에 앉을 자리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움직였죠.
그런데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앉아 있던 여성 승객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놀라 뒷걸음질 쳤고,
그 남성의 엉덩이가 여성의 허벅지 쪽에 스쳤습니다.
피해 여성은 즉시 “엉덩이로 내 무릎에 앉았다”며 신고했고,
남성은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죄’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피고인의 주장 — “술에 취해 자리로 착각했을 뿐”
피고인은 수사 단계부터 일관된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술에 취해 빈자리를 찾다 실수로 닿았을 뿐, 일부러 앉은 게 아닙니다.”
그날 그는 당구 동호회 회식에서 소주 4병 정도를 마신 상태였습니다.
기억이 희미했고,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불쾌감을 준 건 인정하지만
‘성적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CCTV 영상이 보여준 진실
법원은 지하철 내부 CCTV 영상을 면밀히 확인했습니다.
영상에는 피고인이 비틀거리며 열차에 타는 모습,
피해자 근처로 다가와 앉으려다 피해자가 놀라 일어나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닿았는가’였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약간 떨어진 곳에서 서 있다가
두 걸음 정도 이동해 봉을 잡고 몸을 돌렸습니다.그 과정에서 피해자와 옆 사람 사이의 좁은 공간에 엉덩이를 들이밀 듯 움직였고,
이때 피해자의 허벅지 부분과 일시적으로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즉, 무릎 위에 완전히 앉은 장면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 추행범의 행동치고는 달랐다
피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피고인은 곧바로 “어쿠,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법원은 이 부분을 주목했습니다.
일반적인 추행범이라면 피해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하려 하지만,
이 남성은 즉시 사과하며 놀란 태도를 보였습니다.
따라서 법원은
“고의적 추행이라기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빈자리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의 결론 — “의도 없는 접촉, 범죄 아냐”
법원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피고인은 술에 취해 있었고,
피해자의 무릎 위에 앉으려는 행동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사과 발언 등 태도 역시 의도적 추행과 다르다.
결국 재판부는
“강제추행의 인식이나 의사 없이, 실수로 신체가 닿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공중밀집장소 추행죄의 ‘고의성’이 얼마나 엄격히 다뤄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단순히 신체가 닿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습니다.
“성적 의도”, 즉 ‘추행하려는 마음’이 객관적으로 증명되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