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시작 — “그날, 공장 앞 소란”
2019년 9월
용인시의 한 플라스틱 제조공장 마당에서 격한 말싸움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시아버지 C, 전 며느리 A, 그리고 A의 어머니 B가 서 있었습니다.
B는 분노에 차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당신이 우리 딸을 범하지 않았느냐!
니가 못살고 나간 이유를 말해라!”
공장 안팎에는 직원들과 마을 이장, 택시기사 등 여러 사람이 있었고,
이 소란은 순식간에 공장 주변으로 퍼져나갔습니다.
2. 공소사실 — “허위 강간 주장, 명예훼손 방조”
검찰은 이 사건을 이렇게 보았습니다.
A는 2013년 남편 D와 이혼한 뒤,
“시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는 거짓말을 어머니 B에게 했습니다.그 후 A와 B는 피해자 C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당하자 공장까지 찾아가 항의했습니다.결국 B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허위 사실을 외치며 소란을 피웠고,
A는 “그 현장에 함께 가서 112에 신고해 경찰을 불러들였다”는 이유로
명예훼손 방조죄로 기소되었습니다.
3. 검찰의 주장 — “112 신고는 사람을 모이게 한 방조행위”
검찰은 A가 단순한 동행인이 아니라
모친의 명예훼손을 돕는 역할을 했다고 봤습니다.
“피고인은 B가 소리를 지를 것을 알고도 공장에 동행했고,
경찰을 불러 사람을 더 모이게 함으로써
허위사실 유포를 용이하게 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항소심에서 죄명을
‘명예훼손’에서 ‘명예훼손방조’로 변경했습니다.
4. 법원의 판단 — “단순 동행·신고로는 방조 고의 인정 어려워”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 공장 방문의 목적은 ‘대화와 합의’
B는 법정에서 “안사돈(피해자의 배우자)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갔다”고 진술했고,
A 역시 “집을 나온 경위를 설명하려 했다”고 진술했습니다.두 사람은 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소란을 피운 것이 아니라
주방에서 피해자와 대화를 나누다 언쟁이 커졌다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피고인이 당시 B가 명예훼손을 할 것을 미리 인식하거나
예견했다고 보기 어렵다.”
② 112 신고는 오히려 ‘충돌 회피’ 목적
피해자가 “그런 소리 할 거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하자
A가 먼저 112에 신고했습니다.실제 112신고처리표에는
“어떤 남자와 다툼이 있다”는 문구만 있고,
성폭력 관련 언급은 전혀 없었습니다.
“피고인이 사람을 모이게 하여 허위사실을 유포하려는 목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③ 모친의 발언은 ‘우발적’이었다
B는 감정이 격해져 언쟁 도중
우발적으로 명예훼손성 발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피고인이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곧바로 방조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5. 법원의 결론
“피고인이 공장에 동행하거나 112에 신고한 사실만으로는
모친의 명예훼손 행위를 용이하게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에게 그와 같은 인식이 있었다고 볼 증거도 없다.”
6. 판결의 의미 — “가족의 감정적 언행, 법이 대신 죄를 묻지는 않는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감정적인 가족 갈등 속에서의 언행을 형사처벌로 확장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룬 사례입니다.
법원은 “모친의 우발적 발언을 딸이 미리 예견하거나 도운 정황이 없다면
방조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의심이 간다 해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증거가 없다면 무죄 —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을 다시 확인한 판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