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개발 현장, 수년간 얽힌 관계 속에서 벌어진 금품 수수
한 재개발구역.
수많은 업체들이 설계·이주관리·범죄예방 등 각종 용역 수주를 위해 뛰어드는 곳.
그 중심에는 과거 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낸 A씨가 있었습니다.
A씨는 공식 직함을 내려놓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국장님”이라 불리며 영향력이 상당했습니다.
검찰은 A씨가
설계업체 선정,
범죄예방 용역,
이주관리·지장물정비 용역
과 관련하여 여러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고,
그 대가로 청탁을 들어줬다고 보고 기소했습니다.
반면 A씨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정식 지위도 없었고, 결정권도 없었습니다.
부탁을 들어준 적도 없고, 받은 돈도 대부분 정상적인 대가입니다.”
법원은 이 복잡한 관계를 사건별로 나누어 어떤 부분은 무죄, 어떤 부분은 유죄로 판단합니다.
2. 설계용역 관련 금품수수 — 무죄
검찰은 A씨가 설계업체 선정 과정에서
피고인 B로부터 고액을 수수한 ‘배임수재’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근거
B업체(E)가 설계업체로 선정된 것이 아니라
단순 하도급 성격의 공동수급 관계였다는 점A씨가 먼저 B에게 금품을 요구한 정황이 없다는 점
자금 투입 구조를 보면 오히려 A씨 측이 비용 부담을 한 부분도 있었다는 점
즉,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움,
금품의 흐름 또한 ‘대가 관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설계업체 관련 부분은 무죄가 되었습니다.
3. 조합 설립 이후의 영향력 행사 여부 — 무죄
검찰은 A씨가 조합 설립 이후에도
사실상 조합의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법원은 다음 사정들을 중시했습니다.
이미 조합장·이사·감사가 구성되어 있었고 A씨는 단지 ‘대의원’ 신분이었을 뿐
대의원의 의결권 행사는 본인의 사무, 조합의 사무가 아님
과거 사무국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적·실질적 사무처리자 지위를 인정하기는 어려움
이 부분 역시 배임수재의 전제요건(타인의 사무처리자 지위)이 충족되지 않아 무죄가 되었습니다.
4. 그러나… 범죄예방 용역 관련 금품수수 — 유죄
사건의 흐름을 뒤집은 것은 별도의 용역 수주 과정이었습니다.
2015년 3월, 범죄예방 용역을 맡고 싶었던 업체 O는
소개를 통해 A씨에게 5,000만 원을 건넸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법원이 믿은 증거들
돈을 마련한 D, 전달한 Q·P의 일관된 진술
A씨·Q·P 사이에 있었던 녹취록 내용
추천업체 명단에 실제로 O가 포함되도록 A씨가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
선정이 좌절되자 2018년 O측이 돈을 돌려받은 사실
법원은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결국 이 부분은 배임수재 → 유죄입니다.
5. 이주관리·지장물정비 용역 관련 금품수수 — 유죄
이 부분도 금액이 큽니다.
A씨는 특정 업체(T)가 용역을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로
업체 운영자 U로부터 총 2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A씨는 “차용금일 뿐, 청탁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이 인정한 핵심 포인트
돈이 전달된 방식·시점·자금 흐름이 ‘정상적인 대여’라고 보기 어려움
A씨는 돈을 받은 직후 이 돈을 또 다른 업체(L)에 투자하는 계약을 체결
U는 수사기관에서 일관되게
“조합 입찰에서 우리 업체를 잘 봐달라는 뜻으로 돈을 줬다”고 진술실제로 설계업체(Y)의 추천을 통해 U가 지정한 업체들이 조합에 추천된 정황
종합적으로 볼 때, 단순 ‘대여’가 아니라
청탁의 대가로 지급된 자금임이 인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부분 역시 배임수재 → 유죄입니다.
6. V구역 설계용역 관련 변호사법위반 — 유죄
여기서는 금액은 비교적 적었지만, 의도가 명확했습니다.
설계용역을 맡고 싶던 Z는 A씨에게 “도와줄 수 있냐”고 문의했고,
A씨는 “가능하다”며 1,500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계약서는 ‘컨설팅 비용’으로 되어 있었지만 법원은 실질을 봤습니다.
결정적 근거
설계용역이 수주된 뒤에야 1,500만 원이 지급됨
Z의 수사기관 진술: “수주되지 않으면 안 줘도 되는 돈이었다”
A씨가 입찰 방식(지명경쟁입찰)을 특정 업체가 유리하도록 직접 관여한 정황
따라서 이 돈은 명백히
알선·청탁의 대가 → 변호사법위반 및 도시정비법위반 성립 으로 판단됐습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판결은 재개발 사업 분야에서 ‘영향력’과 ‘사무처리자 지위’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 과거 직함과 실제 영향력은 다르다
A씨는 과거 사무국장이었지만,
조합 설립 이후에는 법적 권한이 없다고 보아
일부 혐의는 무죄가 되었습니다.
즉,
단순히 경험이 많고 사람들이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사무처리자’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2. 그러나 사실상의 영향력 행사와 청탁의 대가는 명확히 본다
반대로, 실제로 업체 추천에 개입하거나
입찰 방식을 유리하게 변경한 정황이 있다면
이는 곧 사무처리자 지위에서의 부정한 행위로 연결됩니다.
3. 금품의 성격은 ‘형식’보다 ‘실질’이 중요
컨설팅 계약서가 있다고 해도 수주가 되어야만 지급되는 돈이라면 청탁의 대가
차용증이 없어도, 돈의 흐름이 비정상적이면 청탁·알선 대가
이런 판단 기준은 재개발·도시정비 사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금품 수수 문제에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