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찰 하루 전 1,000만 원”…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
2017년 10월.
세종시의 한 상가 관리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입찰을 앞두고,
관리단 대표 B씨가 누군가로부터 현금 1,000만 원을 받았습니다.
돈을 건넨 사람은 상가 구분소유자이자 특정 업체(E)의 실질 운영자와 가까운 A씨.
검찰은 이를 “부정한 청탁의 대가”라고 보고
A씨에게는 배임증재,
B씨에게는 배임수재를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입찰 직전 돈을 주고받았다?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상황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법리적인 본질을 담고 있습니다.
2. ‘관리단장’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타인의 사무처리자’가 되는 건 아니다
배임수재죄가 성립하려면
금품을 받은 사람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 즉
그 일을 ‘대신’ 처리해줄 지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법원은 B씨가 그 지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핵심은 관리단장 선출 자체의 효력에 있었습니다.
법원이 인정한 사실
B씨가 선출된 관리단집회는
다른 건물(N동) 소유자들까지 포함된 잘못된 회의였고
절차상 중대한 하자로 무효였습니다.
때문에 B씨는 법적으로 관리단의 적법한 대표가 아님.
더 나아가 실제로도
상가를 분양한 P사가 계속 관리업무를 수행
B씨 명의의 관리비 계좌·사업자등록 등은 전혀 준비되지 않음
관리단장으로서의 기본 업무(관리비 징수 등) 수행 흔적 없음
즉, 형식도, 실질도 없는 ‘명목상의 관리단장’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령 1,000만 원을 받았더라도
그 지위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아닌 이상
배임수재죄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이 명확해졌습니다.
3. 그렇다면 A씨의 배임증재죄는?
배임증재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여 재물을 제공한 경우”
성립합니다.
즉, 상대방이 사무처리자여야 합니다.
그러나 B씨가 사무처리자 지위가 아니므로
A씨의 행위 역시 배임증재죄 성립 불가.
결국 A씨·B씨 모두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구조가 되어 무죄가 선고된 것입니다.
4. “그래도 청탁 아닌가?”라는 의문에 대한 법원의 대답
사실상 입찰 전후의 정황을 보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수기 장부에 ‘1,000만 원 수령’ 기록
입찰 공고를 올린 바로 그 무렵 돈이 오간 사실
두 사람 모두 돈 거래 자체는 인정
하지만 법원은 밝힙니다.
‘타인의 사무처리자’ 지위가 입증되지 않은 이상,
청탁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이것이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
증명책임과 무죄추정입니다.
정황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법이 요구하는 요건(사무처리자 지위)이 입증되지 않으면
범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1. “직함”보다 중요한 것은 실질적 권한
명함에 ‘관리단장’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해서
그 지위가 곧바로 법적 사무처리권한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절차적 하자가 있는 선출
실질적 관리 업무 미수행
기존 분양사의 관리 지속
이런 요소들이 겹치면 사무처리자 인정이 어렵습니다.
2. 형사처벌은 ‘의심’이 아니라 ‘입증’
정황상 부정한 청탁을 의심할 여지가 있어도
필수 요건이 빠져 있으면
그 어떤 혐의도 성립할 수 없습니다.
판결문에서도 명시된 것처럼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을 요구합니다.
3. ‘집합건물 관리단’ 관련 사건의 중요한 기준 제시
아파트·상가 등에서 관리단장 선출 절차가 종종 문제가 되는데,
이 판결은 그 절차가 정확히 준수되지 않으면
관리단 대표자 지위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따라서 관리단 관련 분쟁에서
선출 절차
구분소유자 범위
실제 관리 업무 수행 여부
가 매우 중요하다는 기준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