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개요
아파트 옆 공사장에서 붕괴사고가 나면서 인접 동 주민들은 벽에 금이 가고 안전에 대한 두려움까지 겪게 됐습니다. 자연스럽게 “보상을 어떻게 받을 것인가”가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사고 이후 아파트 안에는 두 모임이 생깁니다.
통합대책위원회: 입주자대표회의 쪽이 중심. 시공사와 “대표로” 협상.
피해대책위원회: 일부 주민들이 따로 만든 모임. “합의 내용을 공개하라”, “특정 동만 유리하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 개별 동의 없이 시공사와 어느 정도 보상안을 맞춰 놓은 뒤, 아파트 지하실에서 다음과 같은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통합대책위원회가 추진하는 피해보상안에 동의합니다.”
관리사무소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이 지하실에서 동의서를 받으면서, 작성한 주민에게 수건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방송에서는 “피해대책위원회에 동의서를 내면 보상을 못 받을 수 있으니, 통합대책위원회에 동의서를 내라”는 취지의 안내가 반복되었습니다.
피해대책위원회 쪽 주민들(피고인들)은 “내용도 제대로 공개 안 해놓고 이런 식으로 동의서를 받는 건 부당하다”고 보고 직접 현장으로 내려가 항의를 했고, 이 과정이 업무방해죄로 기소되었습니다.
2. 어떤 행동이 문제됐나? (쟁점 정리)
① 첫 번째 항의
주민들이 지하실로 내려와
“관리사무소 직원이 여기 내려와 이런 동의서를 받으면 안 된다”,
“이거 당신들도 업무방해다, 고소하겠다”라고 말하며 항의
한 주민은 자신이 작성하던 동의서를 여러 번 찢어 버리고
다른 주민은 휴대폰으로 동의서와 자료를 찍으려고 함
이 상황은 약 10분 정도 계속
검찰은 이 행동들로 인해 직원들의 “동의서 접수 업무”가 위력으로 방해되었다고 보았습니다.
② 두 번째 항의
다음 날에도 지하실에서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한 주민은 직원에게
“누가 여기에서 근무하라고 했냐, 올라가라”,
“내가 가만히 안 놔둘 거다”라고 말했고
다른 주민은
“돈 몇 푼 받고 우리가 거지냐”라고 말하며
직원에게 “이렇게 되면 다치는 줄 알아요”라고 말한 것으로 기소
이 장면도 10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검찰은 이 두 장면을 모두 묶어 “주민들이 위력으로 동의서 접수 업무를 방해했으니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법원의 판단 – 왜 업무방해 무죄인가?
1) 먼저 배경이 납득되는지 봤다
법원은 단순히 소리 지른 장면만 보지 않고, 왜 이런 항의가 나왔는지부터 살폈습니다.
붕괴사고라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고
특정 동 위주로 유리한 보상 얘기가 돌았고
합의 내용이 주민들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합대책위 명의로 동의서를 받고 있었다는 점
피해대책위는 그 전부터 민원, 현수막, 문서, 공개토론 제안 등을 통해 절차와 내용을 문제 삼아 왔습니다.
이런 사정을 보면, 피고인들이 “그냥 난동을 부리러 내려왔다”고 보기는 어렵고, 보상 절차에 대한 강한 불신과 항의가 쌓인 상황에서 현장에 간 것으로 본 것입니다.
2)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기준에는 못 미친다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단순 항의, 언쟁, 촬영 정도가 아니라
상대방이 업무를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의사결정이 제압되거나 마비되는 힘을 의미합니다.(폭행, 장시간 점거, 출입 봉쇄 등).
법원이 본 포인트는 간단합니다.
시간: 첫 번째 11분, 두 번째 9분 → 짧은 시간
내용: 헌법을 들고 절차를 지적, 고소 가능성 언급, 촬영 시도, 본인이 쓰던 동의서를 찢은 행위 직원이 들고 있던 서류를 빼앗거나, 동의하려는 주민을 몸으로 막은 행동은 없음
폭력·점거: 폭행, 밀치기, 출입 봉쇄, 욕설 난동 등은 공소사실에 없음
직원 진술: “협박을 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업무를 못 할 정도라고 느끼지 않았다”는 취지
결론적으로, 거칠고 불편했을 수는 있어도 직원들의 동의서 접수 업무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위력’까지는 아니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업무방해죄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4.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판결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업무방해죄의 기준이 꽤 높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단순한 항의, 언쟁, 촬영, 본인이 쓰던 서류를 찢은 행위만으로는 곧바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업무가 마비될 만한 폭력·점거·봉쇄 수준의 방해가 있어야 형사처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주민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형사처벌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붕괴사고와 같은 중대한 사건에서, 보상 절차가 불투명하게 진행될 때 주민들이 강한 어조로 항의하고 현장을 촬영하는 것은 일정 부분 사회가 허용해야 할 영역이라는 취지입니다.관리 측에도 ‘절차의 투명성’ 중요성을 일깨우는 판결입니다.
절차와 정보 공개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라인을 중심으로 동의서를 받다가, 이에 반발하는 주민을 업무방해로 고소하더라도 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사건은,
“강한 항의와 소동이 곧바로 업무방해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붕괴사고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주민 항의를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