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월 결제한도가 없어서 56억 결제가 뚫렸다”… 직원의 실수? 배임?
피고인은 신용카드 결제대행업체(PG사)인 C사의 사업관리팀장이었습니다.
C사는 중소 쇼핑몰 대신 카드사와 대표 가맹점 계약을 맺고 결제를 대행하는 회사로,
가맹점이 결제를 취소하면 그 위험을 PG사가 지게 됩니다.
그래서 회사는 ‘유의업종 PG정책(지침)’을 만들어
신용카드 1건당 결제한도
월 결제한도(보증보험 3배 이내) 를 설정하도록 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중심이 된 D라는 가맹점에 대해
피고인은 1건당 한도는 550만 원으로 설정하면서
월 결제한도는 입력하지 않은 채 결제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5개월간 총 56억 원 결제
이후 다단계·불법 영업으로 결제 취소 폭주
12억 6천만 원 환수 불가능 → 회사 손해
검찰은 “피고인의 고의적 누락”이라고 주장하며 특경법상 배임죄로 기소했습니다.
2. 쟁점 — “이건 고의인가, 실수인가?”
업무상배임이 성립하려면 반드시 배임의 고의가 있어야 합니다.
즉,
① 피고인이 회사에 손해를 일으킨다는 것을 인식했고
② 가맹점(D)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③ 결제한도 미입력 자체가 ‘임무위반’임을 알면서도 했다는 점
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검찰은 피고인의 고의성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3. 법원이 본 사실들 — “이건 고의라고 보기 어렵다”
1) 회사 내부 지침이 구속력 있는 규정이 아니었다
법원은 지침의 운영 실태를 매우 상세히 검토했습니다.
결제한도 미입력 가맹점이 여럿 존재
결제한도를 입력하지 않아도 결제가 가능한 전산 구조
선임자·상급자의 결재 과정 없음
위험관리 절차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음
여러 가맹점의 월 한도가 지침보다 높게 설정된 사례도 존재
회사가 D의 한도 미입력을 파악하고도 수개월간 조치하지 않음
즉,
회사가 스스로 지침을 ‘권고 수준’으로만 운영했다는 점이 명확해졌습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지침을 위반했다고 해서
즉시 ‘임무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2) 피고인이 결제한도를 고의로 미입력했다고 보기 어렵다
법원은 피고인의 행태를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가맹점 D는 실사에서도 별다른 문제 발견되지 않음
초기 몇 달간 정상 결제·정상 수수료 발생
피고인이 가맹점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정황 없음
고의로 회사에 손해를 끼쳐야 할 동기가 없음
지침에 따른 한도 입력 자체가 늘 피고인의 몫이었고, 착오 가능성이 충분함
1건당 한도 증액도 상급자에게 구두 보고했을 가능성 있음
결제한도 미입력은 실무 과정에서 종종 발생하던 실수 중 하나였고,
피고인에게 “D에게 이익을 주기 위한 의도”라고 볼 만한 정황이 없었습니다.
3) 회사도 책임 있는 미관리 → 고의 주장 약화
특히 회사는
2018년 10월 전산 점검에서 이미 D의 한도 미입력을 발견했음에도
즉시 조치하지 않았다는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손해 발생의 큰 원인이 회사 내부 관리 부실에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4. 결론 — “배임의 고의가 증명되지 않았다 → 무죄”
법원은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지침은 구속력 있는 규정이 아님
결제한도 미입력은 업무 착오 가능성이 큼
피고인이 회사 손해를 의도했다고 볼 증거 부족
피고인이 D에게 이익을 주려는 동기·증거 없음
따라서 배임의 구성요건이 충족되지 않음 → 무죄
형사재판의 원칙대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이 부족하면
유죄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5.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1. 내부 지침 위반이 곧바로 배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 내 지침·가이드라인은
실제로 강제력 있게 운영되는지가 핵심입니다.
운영상 권고 수준이라면 위반이 곧바로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2. 배임죄의 핵심은 ‘고의’
아무리 큰 손해가 발생해도
피고인이 손해를 의도했다는 인식이 없다면
형사상 배임으로 처벌하기 어렵습니다.
3. 시스템 부실이 있는 회사는 형사 책임을 직원에게만 전가할 수 없다
위험관리 부재
전산 차단 기능 부재
내부 감독 부실
상급자 결재 절차 부재
이런 구조적 문제는 직원의 배임고의 입증을 어렵게 합니다.
4. PG업계·금융IT 실무자에게 중요한 기준
가맹점 리스크 관리, 결제한도 설정, 내부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되
그 위반이 모두 ‘배임’으로 처벌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