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절차로 믿은 일,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법원 “범죄 인식 없어 무죄”

대출 상담 전화를 믿고 돈을 전달한 남성이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피고인도 피해자였다, 의심만으로 유죄라 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Oct 23, 2025
대출 절차로 믿은 일,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법원 “범죄 인식 없어 무죄”

사건의 시작

2018년 봄, 인천에 거주하던 30대 남성 A씨는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대출을 해드리겠습니다.
법무사 비용과 거래실적만 맞추면 바로 가능합니다.”

급전이 필요하던 A씨는 문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상담원은 “대출을 받기 위해선 거래 이력이 필요하다”며
“통장에 돈을 입금하면 다른 직원이 전달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씨는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대출상담원’은 실제로 보이스피싱 조직원이었습니다.


피해금이 오간 하루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을 해주겠다”며 각종 수수료를 요구했습니다.

그날 하루 동안, 피해자 10명이 각각 20만 원에서 200만 원씩 송금했고
770만 원이 A씨 명의의 B조합 계좌로 입금되었습니다.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은행에 가서 돈을 인출하고, 일부는 지정된 계좌로 송금,
나머지는 현금으로 전달했습니다.

검찰은 A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출책 역할을 맡았다
사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피해금이라는 걸 알면서도 돈을 전달했다”

검찰은 A씨가 단순히 속은 게 아니라
조직과 공모해 보이스피싱 범행을 도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계좌가 범행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조직원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이는 명백한 사기 공모행위입니다.”

특히 A씨가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기 전, 조직원과 지속적으로 연락하며
“보이스피싱 같다는 말도 들었다”고 언급한 사실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저도 피해자였습니다”


A씨는 일관되게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대출을 받는 과정이라고 믿었습니다.
오히려 제 돈 520만 원을 먼저 송금하기도 했습니다.”

A씨는 사건 며칠 전부터
‘대출을 받기 위해 필요한 절차’라며 조직원에게 돈을 보냈습니다.
그는 그 돈이 실제로 대출용 예치금이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조직원과의 대화 중 “주변에서 보이스피싱 같다더라”는 말도 했지만,
이는 자신이 피해자가 될까 걱정된다는 의미였지,

범행에 가담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법원의 판단: “오히려 보이스피싱에 속은 피해자였다”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A씨의 행위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가 보이스피싱임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① A씨는 대출 상담을 받고 있던 사람에 불과했다

법원은 A씨가 처음부터 대출을 목적으로 연락을 시작했고,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말을 믿고 대출 절차를 진행했다고 봤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대출을 받기 위한 과정이라고 믿었고,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받기 전부터
오히려 조직원에게 돈을 송금하며 속은 피해자였다.”

② “보이스피싱 같다”는 표현은 오히려 피해자 입장

A씨가 대화 중 남긴 “주변에서 보이스피싱 같다”는 말에 대해
법원은 “이 발언은 피고인이 의심을 표현한 것일 뿐,
범행을 인식했다는 증거가 아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③ 범죄 인식이나 이익 취득 정황도 없었다

A씨는 돈을 인출해 전달했을 뿐,
어떠한 수익도 받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이후에도 범행에 관여한 적이 없었으며,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지속적 관계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피고인이 범행의 존재를 인식하거나 이를 용인했다고 보기 어렵다.”
고 결론지었습니다.


결론: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 무죄”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사기범행을 용이하게 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결국 A씨는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건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동시에 피의자가 된 사례’로,
법원이 피고인의 인식 여부를 중심으로
무죄 판단 기준을 명확히 제시한 판례입니다.

법원은 “보이스피싱에 이용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공범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범죄 인식의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Sha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