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금 회수 알바가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법원 “범죄 인식 없어 무죄”

SNS에서 알게 된 사람의 제안을 믿고 돈을 전달한 20대 청년, 법원 “보이스피싱임을 알았다는 증거 없어 단순 이용된 피해자”
Oct 23, 2025
투자금 회수 알바가 보이스피싱 사건으로… 법원 “범죄 인식 없어 무죄”

사건의 시작

2021년 여름, 20대 초반의 청년 A씨는 SNS를 통해 한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A씨는 그 사람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연인처럼 가까운 관계’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투자금을 회수하는 일을 도와주면 하루에 10만 원에서 30만 원씩 줄게요.”

단순 심부름처럼 들린 제안이었습니다.
A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곧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수거책’ 역할로 이어졌습니다.


피해자들을 속인 전화 한 통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했습니다.

“기존 대출금을 갚으시면 정부지원 저리 대환대출을 해드리겠습니다.”

피해자들은 “직원이 찾아가 돈을 받겠다”는 말에 속아 현금을 준비했습니다.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지시에 따라
경기도 수원의 한 거리에서 피해자를 만나 1,828만 원을 직접 전달받았습니다.

그리고 미리 출력해 둔 ‘납입증명서’(가짜 서류)를 피해자에게 건넸습니다.

잠시 후 조직원은 피해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대출이 막혔습니다. 추가로 1,080만 원을 더 내야 합니다.”

피해자는 다시 A씨에게 돈을 건넸습니다.
A씨는 받은 돈 중 일부(60만 원)를 제외한 금액을 상선 조직원에게 전달했습니다.


총 피해액은 2,908만 원.
검찰은 이를 보이스피싱 사기로 보고 A씨를 사기 및 사기미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보이스피싱임을 알면서도 범행에 가담했다”

검찰은 A씨가 단순한 심부름꾼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조직의 일원으로 의식적으로 범행에 참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들을 만나 직접 돈을 받고,
허위 납입증명서를 건네며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했습니다.
이건 명백한 공범 행위입니다.”

또한 보이스피싱 수법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A씨가 이를 몰랐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그저 믿었던 사람의 부탁이었습니다”

A씨는 끝까지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저는 단순히 ‘투자금 회수 업무’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보이스피싱이었는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A씨는 직장도 그만두고 이 일을 맡았으며,대가도 크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피해자와 만날 때 마스크나 모자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았고,
이동할 때 자신의 신용카드로 택시요금을 결제할 정도로

범죄 의도가 없는 행동을 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범죄 인식 입증 부족”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실제로 피해자들의 돈을 전달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가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인식하거나 용인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① 나이와 경험 부족, 그리고 SNS를 통한 기망

A씨는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초반의 청년이었고,
SNS를 통해 접근한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법원은 이를 “피고인이 기망당하기 쉬운 환경”으로 보았습니다.

“피고인은 속아서 범죄조직의 지시에 따랐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② 범죄행동으로 보기 어려운 태도

  • 현금 수거 시 자신의 얼굴을 가리지 않았고,

  • 직장동료를 마주치자 반갑게 인사까지 했으며,

  • 수거 과정에서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를 호출하는 등 범죄 은폐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러한 점들은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단 근거가 되었습니다.

③ 미필적 고의조차 입증되지 않음

법원은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이 하는 일이 불법일 수도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더라도,
그것이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

즉, 불법의 ‘가능성’을 떠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범죄 의도’로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판결은 보이스피싱에 ‘이용된 아르바이트형 피해자’의 현실을 드러낸 사례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투자금 회수’ ‘대출 실무보조’ 같은 합법적 명목으로
젊은 구직자나 사회초년생을 현금수거책으로 이용합니다.

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막연한 의심만으로는 범죄의 고의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명확한 인식이 입증되어야만 유죄다.”
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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