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인연이 실제 만남으로
2021년 여름, 한 온라인 게임의 음성채팅방.
그곳에서 30대 남성 A와 15세 소녀 C(가명)가 처음 말을 트게 됩니다.
처음엔 단순한 게임 대화였지만, 점차 사적인 대화로 이어졌습니다.
메신저 대화 속엔 성적인 호기심이 섞인 이야기들도 오갔습니다.
피해자는 “S(가학적) 성향의 남자친구와 SM을 해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고, SNS에 ‘스팽(엉덩이 때리기)’ 관련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두 사람은 결국 2021년 10월 9일 부산에서 만나기로 약속합니다.
“합의된 관계”인가, “위력에 의한 행위”인가
피고인 A는 서울에서, 피해자 C는 지방에서 왔습니다.
두 사람은 한 음식점에서 식사한 후, 인근 모텔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 검찰과 피고인의 주장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 검찰의 주장
피고인은 피해자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엉덩이를 때리고,
“성기를 만져 달라”, “입으로 빨라”는 말을 하며
겁을 준 끝에 피해자를 간음했다.
이후 방을 옮겨(H호)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즉, “위력에 의한 아동·청소년 간음”이다.
🔹 피고인의 주장
모든 행위는 합의하에 이루어진 성관계였다.
엉덩이를 때린 것은 피해자의 요청 때문이었고, 폭행이나 강요는 없었다.
법정에서 드러난 ‘진술의 변화’
이 사건의 핵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물적 증거는 없고,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무죄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진술은 수사 때와 법정에서 크게 달라졌습니다.
구분 | 수사기관 진술 | 법정 진술 |
엉덩이를 때린 이유 | 거절하자 때렸다 | “쳐줄까?”라고 물었고 내가 원했다 |
옷을 벗은 경위 | “안 벗으면 벗기겠다”고 했다 | “싫으면 안 해도 돼”라고 말했다 |
위협 여부 |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다” | “정확히 기억 안 난다” |
이후 메시지 | “키스도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 “무서워서 보낸 거다” (해명 불일치) |
또한 사건 직후 피해자가 보낸 카카오톡에는
“아쉽네요. 그냥 키스도 하고 싶었는데 아프다고 하길래 안 했어요.”
라는 문장이 남아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미 헤어진 뒤 무서워서 이런 말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의 판단 —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은 명확합니다.
“유죄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때만 인정된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점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모순이 많다.
피해자가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피고인의 말을 인정했다.
폭행이나 강제의 흔적이 없었다.
피해자 스스로 가학·피학 성향(SM)에 대한 흥미를 표현한 대화가 있었다.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
결국,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성적 자유의사를 제압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이 던지는 질문 ― ‘위력’이란 무엇인가
이 사건은 ‘위계·위력 간음죄’에서
‘위력’이 어디까지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법원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위압이 있었는가”를 기준으로 보았지만,
미성년자 보호법의 취지에서는
‘심리적 위축’이나 ‘관계의 불균형’도 폭넓게 해석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즉,
피고인은 성인, 피해자는 미성년자
현실적 관계에서 발생한 권력차
이런 요소들이 심리적 위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성적 자율성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미성년자 보호’와 ‘형사증명 원칙’의 경계에 놓여 있습니다.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형사법은 ‘의심스러울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을 우선시합니다.
결국, 법원은
“감정적 동정보다 합리적 증거가 우선한다.” 는 입장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남습니다.
“미성년자의 동의는 진정한 동의인가?”, “위력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이 판결은 그 해답을 완전히 내리지 않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과 ‘증명 원칙’이 충돌할 때,
법은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를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