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 경위
2021년 10월 13일 새벽 2시.
서울 동작구의 한 병원 로비에서 피고인 A씨는
응급실 치료를 마친 뒤 약 처방이 늦어져 잠시 복도 의자에 누워 쉬고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발견한 병원 보안요원 D는
“여기는 누워 있을 곳이 아닙니다. 나가 주세요.”라고 퇴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피고인은
“네가 뭔데? 뭔 상관이냐? 내가 알아서 한다.”
라고 말하며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고,
한 차례 “씨발새끼”라고 욕설을 했습니다.
보안요원은 다른 직원까지 불렀지만 피고인이 움직이지 않자
112에 신고했고, 경찰이 출동했습니다.
경찰은 피고인을 일으켜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으나
피고인은 “경찰이면 다냐”라고 반발하며 저항했고,
계속 버티자 결국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1층 로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피고인은
경찰관 F에게 발길질을 하고, 바지를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이 일련의 행동으로
보안요원의 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했다(업무방해)
경찰의 정당한 체포를 폭행으로 방해했다(공무집행방해)
라고 주장했습니다.
2. 쟁점: 두 개의 혐의는 성립하는가?
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병원 보안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했는가(업무방해)
경찰의 체포가 정당했는가 → 정당하지 않았다면 폭행이 공무집행방해가 되는가
아래에서 각각의 쟁점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 법원의 판단
1) 업무방해죄는 왜 무죄인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은 단순히 기분 나쁜 말이나 언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를 제압할 만한 정도의 세력이어야 합니다(대법원 판례 참조).
그러나 법원은 영상과 진술을 검토한 결과, 다음을 인정했습니다.
피고인은 보안요원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지만, 가만히 누워 있거나 앉아 있었을 뿐
욕설도 한 차례뿐이며, 유형력(물리력) 행사 없음
보안요원은 다른 직원도 함께 있었고,
오히려 “해코지나 위협은 느끼지 않았다”고 진술피고인은 당시 혼자였고, 주변 상황에 비춰봐도 위력 행사로 보기 어려움
단순히 퇴거 요구에 불응하며 버틴 행동만으로는 ‘위력’이라고 보기 부족함
따라서 피고인의 행동은 보안업무를 제압하기 위한 위력 행사라고 볼 수 없다며
업무방해 혐의는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2) 공무집행방해죄는 왜 무죄인가?
핵심은 다음 두 질문으로 정리됩니다.
경찰의 체포는 적법했는가?
→ 적법하지 않았다.
법원은 체포 당시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뒤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피고인은 경찰이 출동했을 때 그저 누워 있거나 앉아 있었음
그 시점에 범죄의 명백성이나 긴급한 체포 필요성이 부족
경찰은 피고인을 붙들기 전에 범죄사실 고지·체포 사유·변호인 조력권을 설명해야 하나 → 이를 전혀 고지하지 않음
수갑을 채운 뒤에도 지체 없이 고지하지 않음
즉, 경찰의 체포는 형사소송법상 절차를 지키지 않은 ‘위법한 체포’였습니다.
그렇다면 피고인의 저항은 공무집행방해인가?
→ 아니다. 정당방위다.
법원은 피고인의 발길질·저항이
“위법한 체포로 인한 즉각적인 신체 침해에 대항한 것”으로 보아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경찰의 직무집행이 적법하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저항은 공무집행방해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4. 판결의 의의
석원재 변호사
이번 판결은 두 가지 법리를 명확히 확인한 의미 있는 사례입니다.
첫째,
업무방해죄의 ‘위력’은 매우 엄격하게 해석된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언쟁이나 퇴거 거부만으로는 업무방해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둘째,
경찰의 체포는 절차적 적법성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며,
이를 지키지 않은 상태에서의 체포는 위법한 체포가 됩니다.
위법한 체포에 대한 저항은 정당방위로 인정될 수 있음을 명확히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판결은
“형사처벌은 증거와 절차 모두가 갖춰졌을 때만 가능하다”는
기본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한 의미 있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