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임원들이 돈을 모아 회사 살립시다”… 그런데 계좌를 잘못 알려줬다?
피고인 A는 피해 회사 D에서 자금 운용·관리·회계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었습니다.
2016년 말 회사가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임원 갹출금 제도를 운영하자, 개발이사 E는 피고인에게 “갹출금을 어디로 넣으면 되나?”라고 물었습니다.
피고인은 이 과정에서 착오로 자신의 개인계좌 번호를 알려주었고,
E는 그 계좌로 4,500만 원을 송금했습니다.
이후 피고인은 자신의 금원까지 더해 총 1억 500만 원을 회사 계좌로 이체했습니다.
하지만 회계 담당자 F는 회사 통장에 입금된 ‘A’ 이름만 보고,
장부에 “가지급금 회수 – A”라고 자동 입력했습니다.
바로 이 기재를 보고 검찰은 피고인을 업무상배임으로 기소했습니다.
2. 검찰의 주장 — “갹출금 4,500만 원을 배임한 것이다”
검찰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갹출금은 회사 자금인데
피고인이 개인계좌로 받아
장부에는 ‘가지급금이 정산된 것처럼’ 기록하게 하여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 → 고의적 업무상배임
하지만 이 주장은 고의성 입증에서 무너졌습니다.
3. 핵심 쟁점 — 피고인에게 ‘배임의 고의’가 있었는가?
업무상배임은 실수가 아니라,
“회사 재산을 해하려는 의도 + 임무 위반의 인식”이 있어야 성립합니다.
즉, 단순히 처리 과정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바로 배임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4. 법원의 판단 — 배임 고의 인정 불가
1) 회계 담당자의 기계적 입력
회계 담당자 F는 회사 계좌에 돈이 들어오면
입금자 이름으로 가지급금 회수 처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이 기록은 매년 결산기에 다시 정정될 수 있는 임시 자료였으며,
피고인이 지시하거나 조작한 증거는 없었습니다.
2) 출처를 숨기려는 행동도 전혀 없음
만약 피고인이 고의로 배임하려 했다면
자금 출처(E)를 숨겼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정황은 반대였습니다.
피고인은 임원회의에서 직접,
“E가 4,500만 원을 보냈고 회사 계좌로 이체했다”고 보고대표 G를 포함한 임원 전원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회사는 이후 E에게 이자까지 지급
대표가 차용증 작성까지 진행
숨기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보기 힘든 행동들입니다.
3) 배임할 동기 자체가 없음
모든 임원이 자금을 갹출한 상황에서
피고인이 유독 4,500만 원만 배임할 이유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4) 계좌 전달 실수 가능성 충분
피고인의 설명(계좌번호를 잘못 알려줬다)에 반하는 정황도 없었고,
오히려 전반적 흐름은 “실수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었습니다.
5. 결론 — 업무상배임 무죄
최종적으로 법원은 다음을 근거로 업무상배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회계 입력은 담당 직원의 관행적 처리
피고인이 출처를 공개해 은폐 가능성 없음
대표·임원 모두 자금 출처 인지
배임 동기 없음
실수 가능성 존재 → 배임 고의 입증 실패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인
“의심만으로 유죄 인정 불가”가 그대로 적용된 사건입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번 사건은 회계 처리 오류가 있다고 해서 바로 업무상배임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피고인은 갹출금을 회사 계좌로 모두 이체했고,
그 사실을 임원들에게 직접 보고했습니다.
자금 출처와 사용처가 투명하게 공유된 상황에서는 은폐 의도나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장부 기재 오류 역시 담당 직원의 평소 방식으로 보일 뿐, 조작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배임죄의 핵심은 ‘회사 재산을 해하려는 명확한 고의’이며,
이번 사건은 그 고의가 증명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이는 “의심만으로는 유죄가 될 수 없다”는
형사재판의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