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고폰 판매대금, 왜 자꾸 안 보내줘요?”
A씨는 휴대폰 대리점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손님이 새 휴대폰을 사면서 기존에 쓰던 단말기를 팔고 싶다고 하면,
그 중고폰을 매입업자에게 넘기고 대금을 손님에게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반복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중고폰을 매입업자에게 판매한 뒤
대금을 손님에게 전달하지 않고,
회사(대리점 본사)로 하여금 그 금액을 대신 보상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 횟수는 무려 27회, 총 금액은 9,287,580원.
회사 입장에서 보면,
“직원이 고객에게 줘야 할 돈을 주지 않고
회사가 대신 물어준 것 = 회사에 대한 손해”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검찰은 업무상배임으로 기소했습니다.
또한 회사가 피고인에게 숙소를 얻어주고 보증금을 내주었으나
피고인이 월세·관리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기 혐의도 추가되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의 결론은 의외였습니다.
모두 무죄.
2. 쟁점 — 직원이 맡은 업무의 ‘위탁자’는 누구인가?
업무상배임이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본인이 위탁한 사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 임무에 위배해 회사에 손해를 줘야 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하나입니다.
중고폰 판매대금 전달 업무는 누구에게 위탁받은 것인가?
회사인가? 아니면 손님(고객)인가?
법원은 명확히 판단했습니다.
중고폰 판매대금 전달 업무는
고객이 직원에게 직접 위탁한 업무이며
“회사(D)의 사무”라고 볼 증거는 없다
즉,
직원(A)은 고객의 돈을 고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지위이지,
회사 돈을 관리하는 지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사가 대신 보상했다고 해도,
그 손해는 고객과 회사가 새로 맺은 관계에서 발생한 것이지
피고인이 회사의 사무를 배신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결국 업무상배임의 핵심 요건(‘회사 사무 위탁 관계’) 자체가 부정되었습니다.
3. 사기죄는 왜 무죄인가?
두 번째 혐의는 “숙소 관련 사기”.
피고인은 회사에
“출퇴근이 멀다, 회사 명의로 숙소를 얻어주면 월세를 내겠다” 고 말했고,회사는 믿고 보증금 2,000만 원을 대신 지급해 임대차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월세·관리비를 제대로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사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① 애초에 갚을 의사가 없음
② 그 의사 없음을 숨기고 상대방을 속임
③ 그 속임으로 인해 재산상 이익을 취득
이라는 구조가 갖춰져야 합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보았습니다.
피고인이 월세를 안 낸 것은 사실이나
그 사실만으로 ‘처음부터 낼 의사가 없었다’고 보기 어렵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기망의사’를 인정할 수 없다
즉, “월세를 안 냈다 = 처음부터 속일 의도가 있었다”
라는 결론이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도 무죄입니다.
4. 결론 — “범죄의 증명이 없다 → 무죄”
법원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중고폰 판매대금 전달 업무는 고객 업무, 회사 업무가 아니다
→ 회사에 대한 업무상배임 불성립숙소 지원 관련하여 피고인의 기망의사도 증명되지 않음
→ 사기 불성립
결국, 범죄의 증명이 부족 → 무죄.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1. 직원이 수행하는 업무가 모두 ‘회사 사무’는 아니다
중고폰 판매를 대리점 직원이 처리했다고 해서
그 업무가 모두 회사의 사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은 업무의 본질을 기준으로 위임자(고객) → 수탁자(직원) 관계를 인정했습니다.
2. 회사가 대신 보상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회사 피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손해가 발생했다고 해서
그 손해가 곧바로 직원이 의무를 위반함으로써 발생한 손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회사가 고객에게 보상한 손해는
직원-회사 간 위임관계로부터 직접 발생한 손해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3. 사기죄의 ‘기망의사’는 가장 판단이 어려운 요소
돈을 안 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것만으로 사기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속일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반드시 입증되어야 하며,
입증이 안 되면 무죄입니다.
4.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을 다시 확인한 판결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 필요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음
의심만으로 유죄 인정 불가
이 원칙이 명확히 적용된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