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 환전 심부름이 보이스피싱으로…” 법원, 무죄 판결

코인 환전 일을 한다 믿고 돈을 전달한 30대 조선족 남성 법원 “보이스피싱임을 인식했다고 볼 증거 없다”
Oct 23, 2025
“코인 환전 심부름이 보이스피싱으로…” 법원, 무죄 판결

사건의 배경

2022년 봄, 조선족 출신의 남성 A씨는 온라인 구직 광고를 통해
한 사람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코인 환전 심부름을 하면 수수료와 경비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업무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고객들로부터 돈을 받아 지정된 사람에게 전달만 하면 된다.”

A씨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사실 보이스피싱 조직의 ‘전달책’ 역할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의 돈이 오가는 구조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환대출’을 미끼로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기존 대출금을 갚으면 저금리로 새 대출을 해드리겠습니다.
대신 현금을 인출해 저희 직원에게 직접 전달하셔야 합니다.”

피해자들은 지시에 따라 현금을 인출했습니다.

  • 피해자 1 : 1,270만 원 전달

  • 피해자 2 : 950만 원 전달

  • 피해자 3 : 2,000만 원 전달

이 돈들은 현금수거책 F씨가 받아 모았습니다.
이후 조직원들은 “F씨가 모은 돈 2,950만 원을 A씨에게 넘겨라”고 지시했습니다.

A씨는 서울 양천구의 한 거리에서 F씨를 만나 돈을 전달받았습니다.
그 순간,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검찰의 주장: “보이스피싱임을 알고 도운 방조자다”

검찰은 A씨가 단순히 전달만 한 것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인식하고 적극 협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 A씨가 조직원과 연락할 때 ‘암호 인사멘트(예: Q님 부탁으로 왔습니다)’를 사용했다는 점.

  • 같은 날 7,000만 원을 전달받은 정황이 있었다는 점.

  • 돈의 액수와 수당 비율이 적힌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점.

이로써 A씨가 단순 심부름꾼이 아니라,
보이스피싱 전달책으로 의식적으로 가담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코인 환전 업무로 알고 했습니다”

하지만 A씨는 재판 내내 일관되게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저는 코인 환전 심부름인 줄 알았습니다.
단순히 돈을 받아 환전소에 전달하는 줄 알았지,
보이스피싱이라는 건 몰랐습니다.”

A씨는 한국어가 서툴고, 국내 체류 경험이 많지 않은 조선족으로
“보이스피싱이라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돈을 전달한 것은 단 한 번이며,
그날은 사실상 경찰이 함정수사로 유인한 상황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보이스피싱 인식 증명 부족, 무죄”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가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인식하거나 용인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① ‘전달책 역할’은 단 1회에 불과

법원은 “A씨가 돈을 전달한 횟수는 1회뿐이며,
그마저도 경찰이 현금을 유인해 전달하게 한 상황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보이스피싱에 가담한 사람이면 여러 차례 반복적인 전달을 통해
범행의 실체를 인식할 수 있었겠지만, 피고인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

즉, 단 한 번의 전달만으로 범죄의식을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② 암호·멘트는 불법적 접선 증거로 보기 어렵다

검찰은 “암호 인사멘트(‘Q님이 보내서 왔습니다’)”가
불법 조직의 은밀한 소통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그 문장은 단순한 형식적 인사일 뿐,
불법적인 의미를 내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이 교환한 대화 내용에는
보이스피싱 조직임을 암시하는 구체적인 표현이 없다.”

 ③ 외국인 신분, 경험 부족도 고려

A씨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으로,
2005년 이후 7차례 한국을 방문했지만 모두 단기체류였습니다.
법원은 “국내 사회에서 보이스피싱 범죄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더라도,
피고인에게 동일한 수준의 인식을 요구하기는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④ “코인 환전 업무”라는 인식은 진술과 부합

A씨는 체포 직후부터 일관되게 “코인 관련 환전 심부름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습니다.
이는 메신저 대화 내용과도 모순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외환거래법 위반 가능성은 있을 수 있으나,
보이스피싱 범죄를 돕는다는 인식은 없었다.”


결론: “의심만으로 유죄라 할 수 없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습니다.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전달책임을 인식하고 F으로부터 돈을 전달받았다고
인정하기에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결국 A씨는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 선고를 받았으며,
배상신청인의 신청은 각하되었습니다.


사건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전달책’으로 이용된 외국인 노동자의 무죄 판결 사례로, 법원이 ‘범죄 인식’ 입증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사례입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단순히 돈을 전달했다고 해서 보이스피싱 방조로 단정할 수는 없다.
범죄 인식이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되어야만 유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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