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업이 보이스피싱으로… 법원 “속은 사람을 범죄자로 볼 수 없다”

해외취업 제안을 믿고 돈을 인출한 남성이 보이스피싱 방조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범죄 인식 입증 부족 단순 이용된 피해자일 뿐”
Oct 22, 2025
해외취업이 보이스피싱으로… 법원 “속은 사람을 범죄자로 볼 수 없다”

사건의 시작

2019년 11월, 한 남성 A씨는 인터넷에서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마카오 카지노 관련 해외취업 모집 — 숙소·항공권 제공, 초보자 가능.”

해외 근무 경험이 있던 A씨에게는 좋은 기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해당 업체에 연락을 했고,
곧 “마카오에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숙소 보증금을 찾아달라”던 그 일

A씨가 마카오에 도착하자,
한국에서 연락한 ‘실장’이라는 사람이 지시를 내렸습니다.

“숙소 보증금을 내야 하니, 우리가 네 계좌로 돈을 보낼 거야.
그 돈을 찾아서 전달해줘.”

A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계좌로 입금된 돈을 인출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대출금 상환금 명목으로 송금된 피해금이었습니다.

검찰은 A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사기 범행을 돕는 방조행위를 했다며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보이스피싱임을 알면서 돈을 인출했다”

검찰은 A씨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보이스피싱 조직의 일부로서 자금 인출책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 A씨가 은행에 “이모가 보내준 보증금을 찾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 점,

  • 계속된 인출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점을 의심하지 않은 점,
    을 들어 피고인이 최소한 보이스피싱일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그냥 숙소 보증금을 찾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A씨의 설명은 전혀 달랐습니다.

“저는 단순히 마카오에서 숙소 보증금을 인출해 전달하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
대가도 받지 않았고, 보이스피싱인지 몰랐습니다.”

그는 오히려 해외취업이라 믿고 비행기를 타고 마카오로 갔으며,
지시를 받은 대로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전달한 것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고의 입증 부족, 단순히 이용당한 것”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 자체는 인정했지만,
그가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인식하거나 방조할 의도(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① ‘해외취업’ 모집 경로가 자연스러웠다

A씨는 해외취업 경험이 있었고,
마카오 근무를 이유로 연락을 한 경위에도 이상한 점이 없었습니다.
법원은 이를 두고

“피고인이 해외취업을 이유로 연락한 것 자체는 자연스러우며,
처음부터 범죄에 가담하려 했다고 보기 어렵다.”
고 밝혔습니다.

② 의심할 만한 상황에서도 ‘범죄 인식’은 없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E은행 카드가 안 될 수도 있으니 F은행 카드를 새로 만들어 오라”고 요구했지만,
A씨는 이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만약 피고인이 보이스피싱에 가담할 생각이 있었다면,
범행이 더 쉬워지도록 새 카드를 발급받았을 것”이라며
범행 인식이 없었던 정황으로 보았습니다.

③금전적 이익이 없었다

A씨는 돈을 인출했지만 수수료나 보상금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체류 중 숙소와 항공권을 제공받았지만,
그 외의 이득은 없었습니다.

재판부는 “이런 점만 봐도 범행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④ 인출 중단 후 즉시 귀국 및 신고

A씨는 인출이 중단되자 은행에 전화를 걸었고,
그 과정에서 “보이스피싱 관련 계좌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즉시 인출을 멈추고 한국으로 돌아와
다음 날 은행과 경찰에 자진 신고했습니다.
남아 있던 피해금도 전액 반환하고, 피해자에게 일부를 변제해 합의까지 마쳤습니다.


결론: “속은 사람을 범죄자로 볼 수는 없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범행에 계좌가 이용된다는 점을
인식하거나 이를 용인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단순히 범행에 이용된 것뿐이며,
범죄의 고의가 입증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사기방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형법 제58조 제2항 단서에 따라 무죄공시도 생략되었습니다.


사건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이용된 해외취업자형 피해자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해외취업’ ‘송금 알바’ 같은 명목으로 일반인을 속여
자금 인출이나 송금에 이용합니다.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피고인이 단순히 이용당한 피해자에 불과하다면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
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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