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USB에 복사해 둔 파일… 이게 배임인가요?”
2015년, 한 식품회사에서 행정업무를 맡아 일하던 A씨는 급여 문제로 회사를 떠났습니다.
퇴사 직전까지 그는 회사에서 사용하던 각종 HACCP 관련 파일들을 USB에 백업해 두었고,
경쟁사로 이직한 뒤에도 그 자료 중 일부를 참고했습니다.
겉보기엔 회사 자료를 경쟁사에 가져가 활용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이건 기밀 유출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는 상황입니다.
검찰 역시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A씨는 퇴사 시 회사와 비밀유지서약서까지 작성했기 때문에,
검찰은 A씨가 회사의 영업상 비밀을 유출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보았고
업무상배임 혐의로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전혀 달랐습니다.
2. 쟁점 1 — 반출된 자료가 ‘영업상 주요자산’인가
업무상배임죄가 성립하려면 가져간 자료가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회사만이 보유한 경쟁상 중요한 자산이어야 합니다.
법원은 A씨가 가져간 자료의 성격을 하나씩 검토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문제된 대부분의 파일은:
인터넷에 이미 공개되어 있는 HACCP 자료,
식품안전나라,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 등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는 자료,
쉽게 검색 가능한 제품 성분, 제조과정, 공정도 등의 정보 이었습니다.
또 회사가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만든 특별한 기술이나 공정도 아니었고,
특별한 비용이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이 자료들이 회사의 영업상 주요자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3. 쟁점 2 — A씨에게 ‘배임의 고의’가 있었는가
두 번째 핵심 쟁점은 바로 A씨의 의도였습니다.
A씨는 “평소 업무 파일을 USB에 백업해 두는 습관이 있었고,
퇴사할 때 해당 USB를 가져간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직한 뒤 USB를 발견하고 일부 업무에 참고한 것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검찰은 경쟁사에 이익을 주려는 의도로 파일을 가져갔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했습니다.
자료는 누구나 구할 수 있는 공개 자료
회사의 자료 관리 체계 자체도 체계적이지 않음
해당 자료가 경쟁사에 특별한 이익을 창출할 수준도 아님
피고인과 관련자들의 사용 행태를 보아 의도적인 유출로 보기 어려움
결국 법원은 A씨가 회사에 손해를 줄 의도로 자료를 반출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4. 결론
재판부는 “자료가 회사의 영업상 주요자산이라 보기 어려우며,
피고인에게 배임의 고의가 증명되었다고 볼 만한 충분한 증거도 없다”며
업무상배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명시했습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퇴사자가 회사 자료를 가져갔다고 해서
곧바로 형사상 업무상배임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첫째, 자료의 기밀성이 핵심입니다.
자료가 공개되어 있거나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한 내용이라면
그 자체로 영업상 주요자산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둘째, 고의성 입증이 필수입니다.
단순한 백업 습관이나 실수로 반출한 경우까지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 회사도 자료를 ‘비밀로 관리하기 위한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비밀유지서약서만 있다고 해서 모든 자료가 곧바로 영업비밀로 승격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업무에서 해당 자료를 비밀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과정이 있어야 법적 보호도 가능해집니다.
이 판결은 특히 HACCP 자료처럼 공개 정보와 회사 내부 자료의 경계가 모호한 업종에서 자료 반출을 둘러싼 형사적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해 준 사례로 의미가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