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거래인 줄 알았던 일,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법원 “고의 입증 부족 무죄”

대출 업무를 돕는 줄 알고 돈을 인출한 남성이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본인 명의 계좌 사용 등 고의 입증 부족 의심만으론 유죄 불가”
Oct 23, 2025
합법 거래인 줄 알았던 일, 알고 보니 보이스피싱… 법원 “고의 입증 부족 무죄”

사건의 시작

2015년 여름, A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을 “T사 직원 C”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국세청 세금 신고 문제로 회사 부품대금을 잠시 다른 계좌로 받으려 합니다.
피고인님 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대신 인출해 주세요.
인출금의 5%를 수고비로 드리겠습니다.”

A씨는 이를 합법적인 부업 제안으로 믿었습니다.
그는 실제로 사업체 이름이 존재하는지도 확인했고, 인터넷 검색에서도 T사라는 회사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 통화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첫 함정이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계략

보이스피싱 조직은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의 계좌가 대포통장에 연루됐다”며 겁을 줬습니다.
그리고 ‘안전한 계좌로 이체하라’
피해자들을 속여 A씨 명의 계좌로 거액을 입금하게 했습니다.

  • 피해자 D씨 → 3,000만 원

  • 피해자 F씨 → 1,000만 원

  • 피해자 H씨 → 1,125만 원

모두 A씨 명의의 은행 계좌로 입금됐습니다.

조직은 A씨에게 지시했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중국인 직원에게 전달하세요.”

A씨는 지시에 따라 은행을 돌며 돈을 인출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인출 시도 중 계좌가 지급정지되며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검찰의 주장: “보이스피싱임을 알고 가담했다”

검찰은 A씨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해 범행에 참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이미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사용되고 있었고,

  • 조직원으로부터 돈을 인출해 전달했으며,

  • 그 대가로 일정 수익을 받기로 했다는 점에서
    사기 및 컴퓨터등사용사기죄 공모자로 기소했습니다.

즉, A씨가 “이 일이 보이스피싱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용인(미필적 고의)했다는 논리였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합법적인 회사 거래인 줄 알았습니다”

A씨는 재판에서 줄곧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저는 T사라는 회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했고,
국세청 세금 문제로 부품대금을 대신 처리하는 정상적인 거래인 줄 알았습니다.
보이스피싱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신용카드나 타인 명의 계좌를 사용하지 않고, 본인 명의 계좌를 직접 사용했습니다.
보이스피싱을 인식했다면 자신의 이름으로 거래할 리 없었다는 논리였습니다.


법원의 판단: “범죄 인식 입증 부족”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보이스피싱임을 인식하고 범행에 가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① 자신의 계좌 사용은 ‘범죄 은닉 목적’과 거리가 멀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는 일반적으로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타인 명의 계좌를 이용합니다.
하지만 A씨는 본인 계좌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계좌를 사용한 것은 범행 인식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정황이다.”

또한 인출이 중단되었을 때 도주하지 않고 경찰이 올 때까지 현장에 그대로 있었다는 점도
범죄 의도가 없음을 보여준다고 판단했습니다.

② 휴대전화·메시지에도 보이스피싱 관련 내용 없음

A씨의 휴대전화에는 ‘C’와 주고받은 메시지가 일부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단순히 신분증 사본·통장 사본 제출 요청뿐이었고,
보이스피싱을 암시하는 문장은 전혀 없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

 ③ 회사 실체 확인 가능성도 있었다

법원은 “A씨가 사칭당한 T사를 실제로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었으며,
그 회사가 실제로 존재했기 때문에
C의 말을 믿을 만한 외관이 있었다”고 봤습니다.

즉, A씨가 합리적으로 속을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결론: “의심만으로 유죄라 할 수 없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습니다.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했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

결국 법원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사건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범행에 연루된 개인의 ‘인식’과 ‘고의’ 판단 기준을 엄격히 제한한 판례로 평가됩니다.

최근처럼 구직자·서민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이용당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법원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분명히 했습니다.

“단순히 범죄에 연루된 외형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의가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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