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대책위와 조합장의 충돌… 문자 한 통이 업무방해·명예훼손이 될까?

조합 총회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문자메시지가 퍼지면서 업무방해·명예훼손 혐의가 제기된 사건. 법원이 무죄로 본 핵심 이유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습니다.
Dec 04, 2025
비상대책위와 조합장의 충돌… 문자 한 통이 업무방해·명예훼손이 될까?

사건개요 — “총회가 중단되자, 두 개의 ‘총회’가 생겼습니다”

이 사건은 지역주택조합 임시총회에서 벌어진 갈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조합은 사업계약 승인, 대출 추인, 이사 선임 등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수백 명의 조합원이 모인 큰 회의를 개최했습니다.

그러나 회의는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와 일부 조합원들은 조합장에게 “추가 안건을 상정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조합장은 “법적 공고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회의장은 점점 소란스러워졌고,
결국 조합장은 회의를 중단하고 1시간 남짓 만에 퇴장해 버립니다.

그러자 남아 있던 약 200여 명의 조합원들은 조합장이 떠난 뒤
자체적으로 회의를 이어가며 ‘조합장 해임’, ‘새 조합장 선출’, ‘이사 선임’ 등의 결의를 진행했습니다.

다음 날, 비상대책위 측은 조합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냅니다.
“어제 총회에서 조합장을 해임하고 새로운 조합장·이사를 선출했습니다.”

그러자 조합장은 즉시 반발했습니다.

“그건 법적 절차를 무시한 불법 결의입니다.
문자 내용은 허위이고, 조합 운영을 방해하는 행위입니다.”

이어서 검찰은

  • 업무방해

  • 명예훼손(허위사실 적시)

  • 방실수색

  •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여러 피고인들을 기소하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문자메시지와 결의가 법적 의미로 ‘효력이 있느냐’와 별개로,
그 사실을 ‘말하거나 알린 것’이 업무방해나 명예훼손이 되는지였습니다.


쟁점 1 — 문자에 적힌 “해임” “가결” 표현은 허위사실인가?

검찰은 문자 내용이 모두 허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절차에 맞지 않으니 결의 자체가 무효 → 그러니 문자도 허위”라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다르게 보았습니다.

① 결의에 절차적 하자가 있더라도, ‘그런 결의를 했다’는 사실 자체는 존재함

실제로 200명 넘는 조합원이 조합장을 해임한다는 결의를 했습니다.
비록 절차상 하자가 있어 ‘법적 효력’은 없지만,
“해임을 결의했다”는 사실 자체는 진짜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문자에서 “해임”, “가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입니다.

② ‘해임된 조합장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표현도 허위라고 보기 어려움

조합장은 분명히 비대위가 진행한 결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문자 내용은 사실을 왜곡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쟁점 2 — 문자 보내기가 ‘업무방해’가 될 수 있을까?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1. 고의적으로 조합 운영을 방해하려는 의도

  2. 조합 업무가 실제로 방해되었거나 방해될 위험이 발생

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근거로 ‘고의와 방해효과 모두 입증 부족’이라고 보았습니다.

① 피고인들이 문자메시지를 보낸 목적은 ‘서면결의를 받기 위함’

이들은 조합장이 전날 결의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합규약에 따라 조합원들의 서면결의를 받으려는 과정이었습니다.
즉, 조합 운영을 마비시키려는 고의가 아님이 드러납니다.

② 문자 내용이 사실을 왜곡했다고 보기 어려움

앞서 본 것처럼, 문자에 적힌 내용은
‘실제 있었던 결의 사실’을 전달한 것이기 때문에
업무방해의 전제가 되는 “허위사실”이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쟁점 3 — 명예훼손의 고의는 있었는가?

명예훼손이 되려면

  •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는가

  •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의도가 있었는가

이 요건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법원은
문자 내용이 “중요한 부분에서 객관적 사실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에, 명예훼손죄의 가장 중요한 요건인 ‘허위성’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의 결론 — ‘업무방해·명예훼손 모두 무죄’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 문자 내용은 ‘결의의 존재’라는 사실을 알리는 수준

  • 이 결의가 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있었던 사실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님

  • 문자 발송의 주된 목적은 조합 운영 방해가 아니라 서면결의 진행을 위한 것

  • 허위사실 적시라고 보기 어렵고, 업무방해·명예훼손의 고의도 입증 부족

따라서 피고인 A, C에 대한 업무방해·명예훼손 혐의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방실수색·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부분은 일부 유죄 유지)


판례의 의미 — “갈등 상황의 표현이 모두 형사처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조합처럼 의견 충돌이 빈번한 조직에서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이 형사처벌의 기준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판례입니다.

특히 중요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절차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님

  • 일부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명예훼손이 되는 것은 아님

  • 업무방해죄는 고의와 실제 방해가 명확히 입증돼야 성립

  • 조직 내 갈등 상황에서의 문자·발언은 사실 여부와 맥락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집단 갈등 상황에서도 표현의 자유와 형사처벌의 경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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