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개요
2021년 1월의 겨울 저녁, 전북의 국도.
편도 2차로 도로를 달리던 프라이드 운전자 A씨(피고인)는
뒤차의 눈부신 불빛을 발견했습니다.
그 뒤에는 K3 승용차를 몰던 20대 여성 운전자 B씨(피해자)가 있었습니다.
A씨는 그 차가 상향등을 켜고 자신을 따라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왜 이렇게 비추나’ 하는 짜증이 올라왔고, A씨는 잠시 속도를 줄였습니다.
이후 A씨는 비상등도 켜지 않은 채 서서히 감속하며 정차했다가 다시 출발,
또다시 속도를 줄였습니다.
B씨는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고,
충돌은 없었지만 큰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결국 B씨는 “보복운전이다!”라며 신고했습니다.
검찰은 A씨를 특수협박죄(형법 제284조)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뒤차의 상향등에 화가 나 위협했다”
검찰은 블랙박스 영상을 근거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가 상향등을 켜고 운전했다는 이유로 화가 나,
비상등 없이 갑자기 제동을 반복하며 피해자를 겁주었다.
또한 피해자가 차선을 바꾸려 하자 진로를 가로막았다.”
즉, 자동차를 이용한 위험한 협박 행위,
전형적인 보복운전 유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급제동이 아니라 서행이었습니다”
A씨는 재판에서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상향등을 켜고 운전했다는 건 오해입니다.
저는 앞에 장애물이 있는 줄 알고 속도를 줄였을 뿐이고,
일부러 위협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서서히 멈춘 것이지, 급제동을 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블랙박스 분석 결과, 급제동 아님”
법원은 블랙박스 영상 분석을 통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영상 속 운전 행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며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① 급제동 아닌 ‘서행 후 정지’
영상에 따르면, A씨는 약 10초간 세 차례에 걸쳐 브레이크를 밟으며 서서히 감속했습니다.
즉, 급브레이크가 아니라 점진적인 제동이었습니다.
뒤차 B씨는 충분히 브레이크등을 인식할 수 있었고,
A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과정이 명확히 보였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② 차선 방해 후 곧바로 양보
피해자 B씨가 1차로로 진입하려 하자,
A씨도 1차로로 살짝 움직여 진로를 가로막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2차로로 돌아와 양보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일시적 혼선”으로 보고,
지속적 위협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③ 보복할 ‘동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검찰은 “상향등 때문에 화가 났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는 “상향등을 켜지 않았다”고 진술했습니다.
또한 이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 증거도 없었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전화통화 기록도
“정황상 신빙성이 낮다”고 평가되었습니다.
결국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보복 운전을 할 동기 자체가 없다.”
고 판단했습니다.
④ 단순 부주의 또는 오해의 가능성 존재
재판부는 “피고인이 단순히 도로 상황을 잘못 판단했거나
운전 중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한 것일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를 형사처벌할 정도의 ‘협박 의도’로 단정할 수는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결론: “보복운전으로 단정할 수 없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습니다.
“피고인이 뒤차를 위협하기 위해 급제동을 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
단순한 감속·정지에 불과하며, 협박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사건의 의미: ‘급제동’과 ‘보복운전’의 경계는 의도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보복운전 판단의 핵심이 “운전자의 의도”임을 다시금 확인시킨 사례입니다.
뒤차가 놀랐더라도,
앞차가 단순히 감속했거나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수준이라면
‘협박’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향등, 차선 변경 등 감정적 오해가
형사사건으로 번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판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