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검사 양성인데 무죄? 진술의 신빙성이 결정을 바꿨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기소된 여성, 그러나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감정이 섞인 진술과 모순된 증언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었다.
Oct 30, 2025
모발검사 양성인데 무죄? 진술의 신빙성이 결정을 바꿨다

1. 또다시 법정에 선 사람

2016년 봄, 서울 광명시의 한 유흥업소.
이곳을 운영하던 여성 A씨는 이미 마약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다시 법정에 섰습니다.
검찰은 A씨가 자신의 애인 I씨로부터 필로폰 주사를 맞았다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2. 검찰의 주장 — “직접 봤다는 목격자가 있다”

검찰의 근거는 명확했습니다.
바로 A씨의 애인 I씨의 진술이었습니다.

“그날 A가 내 앞에서 팔에 주사기로 필로폰을 놓는 걸 직접 봤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 L씨 역시 “그날 A가 약을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은 “두 명의 증언이 일치한다”며 유죄를 주장했습니다.


3. 피고인의 반박 — “그날, 난 제보하러 경찰에 갔다”

하지만 A씨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오히려 내가 I와 L을 경찰에 신고하려 했습니다.
두 사람이 나에게 약을 먹이려 해서 무서워서 도망쳤어요.”

A씨는 ‘마약을 먹이려 한다’며 경찰관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그녀는 직접 경찰서를 찾아갔지만,신고를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말했습니다.


4. 1심의 무죄, 검찰의 항소

1심 법원은 “피고인이 마약을 투약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은 “I와 L의 진술이 일관된 만큼, 원심 판단이 사실오인”이라며 항소했습니다.


5. 항소심의 핵심 쟁점 — “진술은 얼마나 믿을 만한가?”

① 애인 I의 진술은 왜곡됐을 가능성

I는 처음에는 A가 필로폰을 맞는 걸 봤다고 했지만,
정작 A를 경찰에 제보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사관이 “A의 모발에서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말한 후,
I가 돌연 “A가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진술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원은 “A를 제보한 뒤 구속된 I가 원망의 감정으로 허위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② L의 진술은 오락가락

L은 초기에 “A의 투약 장면을 본 적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는 “직접 보진 않았지만 A가 투약한 것 같다”고 말했고,
항소심 법정에 와서는 “3~4번 주사 맞는 걸 봤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이렇게 수차례 진술이 바뀐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고,
피고인을 위해 허위 진술할 이유도 없다는 점에서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③ 모발검사는 ‘투약 시점’ 특정 불가

A씨의 모발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모발검사는 2개월 이내 투약 여부만 보여줄 뿐,
정확한 시점·장소·방법은 알 수 없다”며 결정적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④ ‘경찰 제보’의 정황

A씨는 경찰관 J에게 전화해
“지금 사람들이 나에게 마약을 먹이고 사기를 치려 한다”고 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자신이 약을 한 사람이 제보 전화를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6. 법원의 결론 — “범죄의 증명이 없다”

결국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I와 L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고,
모발검사만으로 투약을 특정할 수 없으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의 투약 사실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


7. 판결의 의미 — “진술이 뒤집히면 증거도 흔들린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마약 사건에서 ‘진술의 신빙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례입니다.
법원은 “진술이 바뀌거나 감정이 개입됐다면,
그 어떤 마약검사 결과보다 증거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했습니다.

“의심은 남더라도, 확신에 이를 정도의 증거가 없다면 무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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