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돈만 받아서 송금하면 된다”… 이렇게 시작된 사건
피고인 A는 구인광고를 보고 연락한 뒤
‘지정된 장소에서 현금을 받아 송금하면 된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흔히 쓰는 ‘현금수거책(수거조)’ 방식입니다.
검찰은 피고인이
피해자 C에게서 1,000만 원
피해자 H에게서 1,662만 원
피해자 M에게서 3,014만 원
피해자 S에게서 685만 원
등을 건네받아 지정된 계좌로 송금한 행위를 보이스피싱 사기 방조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전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핵심은 “피고인이 보이스피싱임을 인식했는가?”,
즉 사기방조의 고의가 있었는가였습니다.
2. 사기방조의 핵심 요건 — “정범의 사기범행을 인식했는가?”
사기방조죄가 성립하려면,
① 정범이 사기 범행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② 피고인이 이를 용이하게 하는 행위를 해야 합니다.
즉, 적어도 ‘보이스피싱 같다’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은 그런 인식조차 할 능력·상황이 아니었다고 보았습니다.
3. 왜 사기방조가 무죄인가?
1) 피고인은 ‘지적장애 2급(지능지수 53)’ 수준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지능지수(IQ) 53
백분위 0.1%
문제 해결능력, 추론능력, 어휘·계산능력 모두 매우 낮음
사회적 적응기능이 만 11세 8개월 수준
(출처: 판결문 p.4, 심리학적 평가보고서·진단서)
이 정도의 지적 능력으로는
전화금융사기의 구조
현금수거책의 위험
무통장입금 경고문구의 의미
등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2) 기본적인 업무조차 “지시에 따라 그대로 수행”하는 수준이었다
피고인의 카카오톡 대화·진술 등을 보면:
텔레그램 설치조차 혼자 못 함
ATM 기기 사용도 미숙
조직원이 “지금 이 버튼 누르세요”라고 일일이 지시해야 송금 가능
즉, 범행을 “도와주겠다”는 의사라기보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 행동한 상황에 가까웠습니다.
3) 경고문구를 봐도 ‘보이스피싱’이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준이 아니었다
조사 영상에 따르면
ATM 화면에 “보이스피싱 의심 거래 주의” 문구가 떴지만,
법원은 피고인의 지적 상태를 고려해
해당 문구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4) 피고인의 행동은 ‘도주’가 아니라 ‘지시에 따른 이동’이었다
검찰은 피고인이 경찰을 보고 도망간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은 계속 조직원과 통화 중
조직원이 “숨으라”고 지시
건물에 숨어 있다가
“택시 타고 나가라”는 지시에 따라 이동
즉,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해 도주한 것이 아니라
조직원의 지시에 그대로 따라 움직인 것에 불과했습니다.
5) 피고인의 과거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전력도 ‘사기 인식’과 무관
피고인은 과거
“신분증·보안카드 사진을 보내라”는 말에 속아 전송한 적이 있어 벌금형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범행은 ‘현금수거’와는 행위 방식이 다르고
그 사건 역시 속아서 한 행동
이라 판단하며
이를 근거로 “사기방조 고의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4. 결론 — 사기방조의 고의 불인정 → 무죄
위 모든 사실을 종합해 법원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렸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사기 범행임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 → 사기방조 무죄”
형사재판은 합리적 의심이 남으면 무죄라는 원칙을 따르며,
이 사건은 그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 대표 사례입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보이스피싱 수거책 알바에 무지하게 가담했더라도
‘사기방조’가 자동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특히:
지적장애 등으로 인해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한 경우
범행 구조를 이해할 수준이 아닌 경우
단순 지시 수행에 불과한 경우
에는 사기방조의 고의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즉, 단순 실행행위만으로는 부족하며
“사기 범행임을 인식했다”는 증명이 확실할 때에만 사기방조가 성립합니다.
이 판결은 보이스피싱 실무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준을 세운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