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0개월이면 원금, 33개월이면 평생 연금처럼 나옵니다”
2017년 가을, 제주·거제·홍천·춘천 등지에서
피고인 A와 B는 ‘T’라는 해외 비트코인 채굴 투자 조직을 소개하며
피해자들을 끌어모읍니다.
그들이 했다고 공소사실에 적힌 말은 꽤 자극적입니다.
“10개월 안에 원금 회수 가능”
“매월 10% 고정 배당”
“코인값 떨어지면 더 많이 받으니 손해가 없다”
“200개만 들고 있어도 한 달에 4~5천만 원 나온다”
“120년 연금처럼 나온다”
누가 들어도 “음? 이거 다단계 코인 사기 아니야?” 싶은 말들이죠.
하지만… 결론은 무죄였습니다.
왜? 자세히 뜯어보면, 생각보다 상황이 다릅니다.
2. 법원이 본 핵심 포인트 — ‘진짜 한 말인가?’부터 흔들렸다
사기죄의 첫 번째 관문은 기망행위(거짓말)가 있었는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검찰의 공소사실이 흔들립니다.
피해자들의 진술이 서로 모순된다
예를 들어:
피해자 L: “A가 말한 건 보너스 구조 얘기지, 매월 10%라는 말은 아니었다.”
피해자 K: “50배 수익? 그런 말 들은 적 없다.”
D: “그때는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즉, 핵심 문장들이 피해자마다 다르게 기억되고 있음.
심지어 중요한 녹취록을 보면
공소사실에 적힌 핵심 문장들이 말한 시점조차 어긋나거나 아예 없음.
“한 달에 20만 원씩 나온다”, “200개면 한 달 수천만 원 나온다”
→ 피해자 L이 이미 대부분 투자한 그 후(한 달 뒤) 녹취록에서 등장
즉, 투자 결정을 할 때 들은 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3. 두 번째 관문 — 피해자들은 정말 속았는가?
여기서도 공소사실은 무너집니다.
피해자들은 이미 ‘위험’을 알고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L은 이미 선물거래 경험자
직접 암호화폐 거래소 계정을 만들어 수천만 원어치 코인을 샀다 팔았다
실제로 투자하면서 수익도 냈다
즉, “비트코인은 위험하다”, “고정 수익이란 없다”는 정도는 누구보다 알고 있던 사람들.
피해자 입장에서 “평생 월급 나오는 코인” 같은 말은
‘확정적 보장’이 아니라
‘과장된 전망’ 정도로 들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입니다.
4. 세 번째 관문 — 피고인이 돈을 먹튀했는가?
여기가 사기 여부의 핵심입니다.
판결문은 이렇게 적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들의 비트코인을 임의로 출금하거나
사적으로 사용한 정황 없음.”
실제로는:
피해자들이 보낸 비트코인은 T 조직에 정상적으로 전송됨
채굴수당과 보너스 내역도 존재
피고인도 자기 돈 넣고 투자함
피고인 역시 T 조직 폐쇄 후 본인의 비트코인도 회수 못함
즉, 피고인은 ‘사기꾼’이라기보다, 피해자들처럼 같이 망한 투자자였습니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기죄의 본질은 “처음부터 속여서 가져갈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자기 돈도 넣었고
추천수당을 받긴 했지만
채굴기 지분 구조를 실제로 믿고 있었고
그 조직이 사기인지 몰랐으며
오히려 투자금 회수 못 한 사람
즉, 편취의사가 증명되지 않은 것입니다.
5. 네 번째 관문 — 방문판매법 위반(다단계) 혐의도 무죄
검찰은 “T 조직은 불법 다단계니까 유죄”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T 조직이 다단계 유사조직은 맞다. (단계·추천수당 구조 때문)
그러나 피고인이 당시 T가 사기·돌려막기 조직임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움
피고인 스스로도 투자했고
미국 채굴장 방문 등 실제 운영된다고 믿게 하는 사정이 있었음
즉, “불법 조직임을 몰랐다면 방문판매법 위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라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6. 결론 — “의심만으로는 유죄 불가” → 사기 무죄
재판부는 명확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핵심 기망 내용 입증 실패
피해자 진술 신빙성 부족
피고인이 실제로 코인을 관리·송금했고, 사적 사용 정황 없음
피고인 역시 투자 손실을 본 점
다단계 조직의 불법성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려움
따라서
“범죄 증명이 부족하다 → 사기 무죄 / 방문판매법 무죄”
판결의 의미 — 코인·다단계 투자 사건의 중요한 기준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코인·다단계 구조가 등장하면
무조건 사기라고 보던 기존 시각을 바로잡아줍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1) 과장된 말 ≠ 사기
투자 시장에서는 ‘전망’과 ‘약속’을 구분해야 하고
피해자도 그 위험을 알고 판단했다면기망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2) 먹튀·횡령 정황이 없으면 사기죄 성립 어려움
돈을 가져갔는지, 사적으로 썼는지,처음부터 속일 마음이 있었는지가
형사재판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