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코인, 최소 50배 갑니다”… 누가 봐도 사기 같은 말
2018년 봄, 서울 서초의 한 사무실.
피고인 A는 피해자에게 이렇게 말한 것으로 공소사실에 적시됩니다.
“E 회사를 만들고, 이 코인을 세계적 거래소 50위권 이상에 상장시킬 겁니다.
지금 투자하면 최소 50배 수익 보장합니다.”
피해자들은 혹했습니다.
소액이 아닌, 무려 21차례에 걸쳐 총 3천9백만 원 상당의 H 코인을 사서 피고인에게 보냈습니다.
겉으로 보면 어디서 많이 본 ‘코인 투자 사기’의 전형입니다.
하지만 법원의 결론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 무죄
이유는 단 하나가 아니라,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기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2. 핵심 쟁점 — 정말 ‘50배 수익’이라고 말했는가?
1) 피해자 진술이 서로 다르다
가장 먼저 무너진 건 피해자들의 진술이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해자 K: “50배 수익 보장 얘기? 나는 들은 적 없다.”
피해자 D: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피해자를 소개한 L: “피고인이 거래소 만든다는 얘기 자체를 한 적 없다.”
여기서 사기 사건의 핵심인 “기망행위(거짓말)” 자체가 애매해집니다.
2) 일부 피해자는 오히려 리스크를 알고 있었다
피해자 D는 수사기관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피고인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승을 ‘예상’한 것인지, 보장한 것인지 헷갈린다.”
코인 시장에 있어 “오를 수도, 떨어질 수도 있다”는 말은 사실상 리스크 설명입니다.
만약 피고인이 진짜 사기를 칠 의도였다면 굳이 리스크를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3. ‘코인 지급’ 사실도 무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침
검찰의 논리는 이랬습니다.
“피고인은 E 회사를 만들 생각도 없고, 코인 경제적 가치도 미미했으니 사기다.”
하지만 판결문에 적힌 피해자들의 진술은 전혀 달랐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돈을 보낸 만큼의 H 코인을 피고인에게서 실제로 받았다.”
즉,
돈을 받고 코인을 주지 않은 상황이 아님
코인을 받고 도망간 것이 아님
피해자들 스스로 “코인을 받기는 받았다”고 인정
여기서 중요한 결론이 나옵니다.
“피해자들은 실제로 ‘대가’를 받았다.”
이는 사기죄의 ‘재산 처분행위 유발’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4. 사기죄의 핵심 — “속일 의도(편취의사)”가 있었는가?
사기죄는 단순히
“과장된 말”, “희망을 심어준 말” 만으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형사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 “처음부터 속일 마음이 있었는가?”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그 의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이 코인을 실제로 지급했다
피해자들도 코인 구조를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50배 수익” 발언 자체는 기억이 불명확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 정황 존재
즉,
“피고인이 대박을 약속했다”는 게 아니라
“피고인이 전망을 말한 것일 뿐”이라는 정황이 강했습니다.
5. 결론 — 기망 인정 불가 → 사기죄 무죄
법원은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피해자 진술은 핵심에서 서로 다르고
코인 지급 사실은 명확하며
‘50배 보장’이 실제 발언인지조차 불분명하고
피고인이 사적 용도로 코인을 사용한 증거도 없음
따라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증명 없음 → 무죄”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은 의심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그 원칙이 그대로 적용된 전형적 사례입니다.
판결의 의미 — “코인 사기”처럼 보여도 증명이 전부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최근 증가하는 “코인 사기”와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은 증거와 진술의 신빙성이 사기 인정 여부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
피해자가 정확히 어떤 말을 들었는지
그 말이 과장인지, 허위인지
그 말 때문에 실제로 돈을 보냈는지
피고인이 처음부터 속일 마음이 있었는지
이 네 가지가 명확히 증명되지 않으면 형사상 사기죄는 쉽게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번 판례는
“코인 투자 실패 ≠ 사기” 라는 중요한 기준을 다시 확인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