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적 시비로 시작된 출근길, 보복운전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 법원 “협박 의도 없어 무죄”

출근길 도로에서 경적 시비 후 급정차한 운전자가 ‘보복운전’으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낯선 도로에서의 일시적 정차일 뿐 협박 의도 없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Oct 21, 2025
경적 시비로 시작된 출근길, 보복운전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 법원 “협박 의도 없어 무죄”

사건 개요

2022년 9월의 어느 아침, 출근 시간대의 혼잡한 도로.
K5 차량을 몰던 A씨(피고인)는 3차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A씨는 1차로에서 우회전 차선(2차로)로 진입하려다,
뒤따르던 카니발 차량(피해자 B)이 갑자기 경적을 길게 울리자 놀랐습니다.

순간적으로 A씨는 “무슨 위험이 있나?” 싶어 잠시 속도를 줄였고,
다시 한 번 경적이 울리자 잠시 멈춰 섰습니다.

 

이 짧은 정차로 인해 양측은 언성을 높이게 되었고,
결국 피해자는 “고의로 급정거해 나를 위협했다”며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검찰은 A씨를 ‘자동차(위험한 물건)’를 이용해 협박했다는 이유로
특수협박죄(형법 제284조)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화가 나서 급정지하며 위협했다”

검찰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은 경적 소리에 격분해 피해자의 차량 앞에서 급감속·급정지하며
보복운전을 한 것이다. 이는 위험한 물건(자동차)을 이용한 협박행위에 해당한다.”

즉, 단순한 정차가 아닌,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주려는 ‘보복행위’라는 논리였습니다.


피고인의 입장: “위험 상황인 줄 알고 잠시 멈춘 것뿐입니다”

A씨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첫 번째 경적에 놀라서 본능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이 갔습니다.
두 번째 경적이 울릴 때는, 합류 지점이라 혹시 위험한 상황인가 싶어 잠깐 멈춘 겁니다.
화가 나서 멈춘 게 아닙니다.”

A씨는 자신이 보복운전을 할 이유가 없었으며,
출근길에 처음 가보는 도로라 익숙하지 않았던 점도 설명했습니다.


법원의 판단: “보복운전으로 보기 어렵다”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운전 행위가 협박의 고의로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했습니다.

① 서행·정차가 가능한 도로 환경이었다

A씨가 서행하거나 정차한 장소는
횡단보도와 삼거리 합류 지점으로,
다른 차량의 움직임을 살피며 잠시 멈출 수 있는 구간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신호가 황색으로 바뀌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정차 자체가 이례적이라 보기 어려웠습니다.

② 피고인은 ‘낯선 도로’에서 신중하게 운전한 상황이었다

A씨는 해당 도로를 “두세 번째 출근하면서 처음 가본 길”이라고 진술했습니다.
따라서 도로 구조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적이 울리자 ‘위험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충분했습니다.

③ 피해자가 먼저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

블랙박스 영상에는 피해자가 차량 내부에서 욕설을 하며 경적을 울리는 장면이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이 점을 들어

“피해자가 먼저 공격적으로 피고인을 도발한 측면이 있다.”
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사고 직후 피해자가 먼저 내려 피고인에게 다가갔음에도,
A씨는 흥분하거나 욕설을 하지 않았던 점을 주목했습니다.
즉, 보복운전 직후라고 보기 어려운 평정한 태도였다는 것입니다.

④ 접촉사고의 원인도 피해자에게 일부 있었다

접촉사고가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법원은

“피해자가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고
근접 주행을 하며 과도하게 경적을 울린 탓이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 “협박의 고의 입증 실패 → 무죄”

결국 재판부는

“피고인의 운전은 교통상 안전을 위한 일시적 정차로 보이며,
상대를 협박하려는 의도는 인정되지 않는다.”

라고 판시하면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사건은 ‘경적 시비가 곧 협박은 아니다’라는 점을 명확히 한 판례로 남았습니다.


사건의 의미: ‘감정 운전’의 오해, 법원은 냉정히 본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출근길의 짧은 오해가 형사사건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법원은 감정적인 판단이 아닌 도로 환경, 운전자의 인식, 블랙박스 기록을 근거로 객관적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서행”과 “급정지”는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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