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개요
2019년 5월의 늦은 오전, 용인시의 한 삼거리.
도로 위에서 팰리세이드 차량을 운전하던 A씨(피고인)는
앞쪽 차선에서 쏘나타 차량(피해자 B)이 갑자기 방향지시등도 없이 끼어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A씨는 “저렇게 가면 사고 나겠는데…” 싶었습니다.
그는 잠시 후 신호 대기 중 피해 차량 옆에 서서
‘이대로 두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에 피해 차량을 앞으로 끼어들어 정차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피해 차량이 오른쪽으로 밀리면서
맞은편에서 오던 오토바이(피해자 C)와 충돌했습니다.
결국 피해자 2명이 각각 2주, 6주 진단의 부상을 입게 되었고,
검찰은 A씨를 ‘보복운전으로 인한 특수상해’,
또는 예비적으로 ‘특수협박’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화가 나서 밀어붙였다”
검찰은 A씨의 행위를 ‘위험한 물건인 자동차를 이용한 상해’로 보았습니다.
“피고인은 피해 차량의 끼어들기에 화가 나,
보복의 의도로 쏘나타 앞으로 끼어들어 오른쪽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로 인해 피해 차량이 오토바이와 충돌했습니다.”
즉, “난폭운전에 대한 분노가 폭력적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논리였습니다.
피고인의 입장: “보복이 아니라 제지였습니다”
A씨는 수사단계부터 재판까지 일관된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피해자의 위험한 운전을 막으려 했습니다.
난폭운전을 제지하려는 목적이었고, 위협하거나 다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그는 당시 “피해 차량의 난폭운전이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무리한 끼어들기로 내 차량이 급제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국민참여재판의 결과: 배심원 7명 전원 ‘무죄’
법원은 이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심리했습니다.
그 결과, 배심원 7명 전원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이 내려졌습니다.
법원의 판단: “보복의 의도, 증거로 입증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① ‘난폭운전 제지 목적’ 주장에 일관성 있음
A씨는 처음부터 “사고를 막기 위해 피해 차량을 세우려 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습니다.
그의 진술에는 큰 모순이 없었으며, 이를 반박할 만한 객관적 증거도 없었습니다.
검찰은 ‘분노에 의한 보복’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고의적 밀어붙이기’의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② 피해자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도 모호했다
피해자 차량의 전·후방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했지만,
A씨가 의도적으로 밀어붙이거나 위험한 운전을 한 장면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상에는 피해 차량이 차선 변경을 시도하며
A씨 차량이 급감속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이후에도 ‘상향등 점등’이나 ‘가속 추격’ 같은 보복운전의 전형적 패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③ 피해자의 진술, 객관적 근거 부족
피해자 B는 “피고인이 끼어들자 일부러 가속했다”고 진술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는 없었습니다.
또한 피해자 C(오토바이 운전자)는 “팰리세이드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즉,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보복 의도’의 입증이 불가능했습니다.
④ 사고 후 피고인의 태도 역시 정상적이었다
사고 직후 A씨는 오히려 오토바이 운전자의 부상 상황을 확인하고 사고를 수습했습니다.
또한 피해자 B와의 대화에서도 위협적이거나 폭력적인 언행이 없었다는 점이 영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⑤ 형사조정 참여 역시 ‘보복운전 부인’의 일환
A씨는 수사단계에서 형사조정 절차에 참여했지만,
그 자리에서도 “보복운전이 아니기 때문에 배상의무가 없다”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법원은 이를 “진정성 있는 부인으로 보이며,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 “의심은 있지만, 합리적 증명은 없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할 고의나 협박의 의도로
차량을 운행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
유죄로 인정하기에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준의 증명이 부족하다.”
결국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 선고가 내려습니다.
사건의 의미: ‘도로의 정의감’과 ‘보복의 경계선’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공익적 제지행위’와 ‘보복운전’의 경계가 얼마나 얇은지를 보여주는 판례입니다.
운전자가 “위험한 상황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 행위가 상대에게 위협으로 비쳐지면 형사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판결은, 보복운전으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명백한 ‘고의’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