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운전자의 사고, 보복운전 혐의로 번졌지만… 법원 “고의 증거 없어 무죄”

경찰서로 가자는 말을 오해한 고령 운전자, 보복운전 혐의로 기소됐지만 법원은 무죄 “분노 아닌 착각과 운전 미숙… 의도 입증 안 돼 처벌 불가”
Oct 21, 2025
고령 운전자의 사고, 보복운전 혐의로 번졌지만… 법원 “고의 증거 없어 무죄”

사건 개요

2020년 10월, 부산과 양산을 잇는 4차로 도로.
고령의 운전자 A씨(피고인)승용차를 몰고 1차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오토바이(피해자 B)가 빠른 속도로 추월해 지나가며 굉음을 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란 A씨는 잠시 오토바이 옆으로 다가가게 되었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위협했다”고 느껴 뒤를 돌아보며 항의했습니다.

이후 두 차량은 몇 분 간격으로 인근 교차로 신호에 함께 정차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피해자는 창문 너머로 소리쳤습니다.

“신고할 겁니다! 블랙박스 다 찍혔어요. 경찰서에서 봅시다!”

이 말을 들은 A씨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 말을 “같이 경찰서로 가자”는 뜻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는 오토바이를 따라 이동했고,
그로부터 400여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갓길에 멈춰 있던 오토바이를 그대로 들이받았습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요추 골절로 8주 진단의 중상,
오토바이는 3,500만 원 상당의 수리비가 발생했습니다.
검찰은 즉시 A씨를 ‘보복운전으로 인한 특수상해 및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분노에 못 이겨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검찰은 A씨가 피해자의 도발적인 언행에 격분해,
보복심리로 오토바이를 고의로 들이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은 ‘경찰서에서 보자’는 말에 화가 나,
오토바이를 추격해 앞범퍼로 충돌시켜 상해를 입혔다.”


즉,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닌 ‘자동차를 이용한 폭력행위’라는 논리였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같이 경찰서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A씨의 설명은 전혀 달랐습니다.

“피해자가 ‘경찰서에서 봅시다’라고 해서 같이 가자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따라가던 중, 오토바이가 갑자기 갓길에 멈춰선 걸 미처 못 봤어요.
고의로 들이받은 게 아닙니다.”

그는 당시 운전 미숙과 시야 한계로 인해 제동이 늦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사고 이후에도 분노나 욕설, 위협적인 언행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의 판단: “고의의 증거가 부족하다”

울산지방법원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검찰의 주장을 뒷받침할 직접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며,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정을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① 피고인은 평소 운전 미숙으로 사고 위험이 높았다

사고 당일 A씨는 이미 두 차례나 도로 중앙 화단 연석을 들이받은 전력이 있었고,
제동이나 조향장치 조작이 서툴렀습니다.
또한 사고 직전에도 정차 차량을 뒤늦게 발견해 급히 차선을 변경하는 등
운전이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② 피해자의 손짓이 오해를 불렀을 가능성 있음

사고 전 피해자는 A씨에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그 제스처를 ‘따라오라’는 신호로 오인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피해자 역시 “그렇게 오해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진술했습니다.

③ 블랙박스 영상에서 ‘분노나 위협’의 흔적이 없음

피고인의 차량 블랙박스에는
욕설, 큰소리, 급가속 등 보복운전의 특징이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운전하며 오토바이를 따라가는 장면이 확인되었습니다.

④ 피고인은 고령의 치매 환자였다

A씨는 당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법원은 “그런 피고인이 분노를 참지 못해 보복운전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결론: “운전 미숙의 사고, 고의는 없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습니다.

“피고인이 오토바이를 고의로 들이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경찰서로 향한다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고,
운전 미숙으로 인한 사고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무죄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사건의 의미: ‘보복운전’과 ‘운전 미숙’의 경계선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분노로 인한 고의적 충돌로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지만,
법원은 “의도”의 입증이 없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을 지켰습니다.

특히 고령자나 인지능력이 저하된 운전자의 경우,
‘분노’보다 ‘오해·실수’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세심하게 고려한 점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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