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배경
광주의 한 오피스텔.
2020년 2월, 30대 남성 A씨는 텔레그램에 접속했습니다.
그는 ‘무료 야동 공유방’이라는 이름의 방에서 누군가가 보낸 링크를 클릭했고,
그 안에는 17개의 영상 파일이 들어 있었습니다.
A씨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 링크를 자신의 클라우드 계정에 저장했습니다.
7개월 뒤, 경찰은 ‘N번방’ 수사 과정에서 A씨의 계정을 발견했습니다.
그 안에 있던 영상이 ‘청소년 성착취물’이라는 이유로,
A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착취물 소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검찰의 주장
검찰은 A씨가 영상 속 인물이 미성년자임을 알면서도 해당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보관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파일 이름에 숫자와 영어가 섞여 있었지만, ‘미성년자’라는 단어가 포함된 링크 출처와 텔레그램 방의 특성상, A씨가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상의 제목과 내용이 모두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임을 암시하고 있었고,
피고인은 이를 알면서도 장기간 보관했다.”
피고인의 항변
A씨는 “영상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인지 몰랐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단순히 ‘성인물 공유방’으로 알고 링크를 클릭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일주일 뒤 영상을 모두 삭제했고, 이후에는 해당 계정에 로그인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파일 이름이 단순 숫자 조합이라 어떤 영상인지 알 수 없었고,
실제로 해당 영상을 재생한 적도 없습니다.”
법원의 판단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① ‘파일 이름’만으로는 아청물 판단 불가
법원은 “파일명만 봐서는 영상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다”며,
단순히 숫자나 영어 조합으로 되어 있는 파일 이름만으로 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등장 인물이 다소 어려 보인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로 단정할 수는 없다.”
② 경찰도 직접 재생 확인 안 해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A씨의 계정에서 영상을 확인했지만,
실제 재생하지는 않고 영상 표면에 보이는 이미지만 촬영했습니다.
법원은 “사진만으로는 등장인물이 미성년자인지 판단할 수 없다”며,
피해자의 나이조차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③ ‘고의성’ 입증 실패
A씨가 링크를 클릭했을 당시, 그 방의 내용이나 영상 출처가 불분명했고,
또한 성인 배우를 기용했다는 문구가 포함된 사이트로 연결된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결국,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A씨가 미성년자 성착취물임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사의 증명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를 없앨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면,
피고인의 주장에 일부 모순이 있더라도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한다.”
사건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판결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판단 기준’을 구체화한 판례로 평가됩니다.
법원은 “외모가 어려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아청물이라 단정할 수 없다”며,
영상의 출처·제작 경위·등장인물의 신원 등 객관적 근거가 필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무분별한 형사처벌의 위험을 경계한 판결로,
“형벌법규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확장·유추해석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