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당 앞의 체포극
서울 서초구의 한 식당 앞.
남성 A씨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낚아채듯 압수한 경찰은 즉시 그를 체포했습니다.
가방 안에서는 필로폰 980.46g, 시가 약 1억9천만 원 상당의 마약이 발견됐습니다.
검찰은 A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향정)’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그는 마약류 취급자가 아님에도 필로폰을 대량 소지했다고 본 것입니다.
2. 피고인의 주장 — “전달만 부탁받았을 뿐”
A씨는 강하게 항변했습니다.
“나는 E의 부탁으로 봉지에 담긴 물건을 F에게 전달하러 갔을 뿐입니다.
그게 필로폰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낯선 경찰이 다가오자 도망친 이유도 “해를 가하려는 줄 알고 놀라서 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 검찰의 논리 — “이들은 이미 거래 관계였다”
검찰은 E와 F의 진술을 근거로 A씨의 고의를 주장했습니다.
E와 F의 증언: “A씨가 우리에게 필로폰을 팔려고 했고,
‘얼음(ice)’이나 ‘일(work)’, ‘사업(business)’ 같은 은어로 마약을 언급했다.”거래 정황: “A씨가 1kg당 미화 8만 달러를 요구했고,
실제 가게에서 돈을 세었다.”
검찰은 문자메시지와 거래 장소 CCTV 등을 제시했지만,
법원은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4. 법원의 판단 — “증거의 모순과 불확실성”
법원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① ‘필로폰’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E와 F는 “A씨가 은어를 썼다”고 진술했지만,
두 사람이 제시한 휴대전화 앱 대화(바이버) 내역 어디에도
‘얼음’, ‘일’, ‘사업’, ‘물건’ 같은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은 다른 문자메시지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② 제보 경위가 엇갈렸다
E는 “경찰 휴대전화로 직접 신고했다”고 했고,
F는 “평소 알던 마약수사대 경찰에게 전화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 수사관 G의 진술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첩보를 받아 제보자를 만났는데 그게 E와 F였다고 했습니다.
즉, 누가 처음 신고했는지조차 불분명했습니다.
③ 통화기록이 진술과 불일치
F는 “피고인이 새벽 0시쯤 전화를 걸어와 ‘필로폰을 팔아줄 수 있냐’고 했다”고 진술했지만,
실제 통화기록에는 반대로 E가 A에게 전화를 건 내역만 존재했습니다.
피고인이 전화를 건 흔적은 없었습니다.
④ 돈을 세었다는 증언도 서로 달랐다
E는 “A씨가 1kg 필로폰 대금으로 8만 달러를 요구했고,
우리 가게에서 직접 돈을 만지고 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찰관 G는 “A씨가 돈을 만졌다고 한 적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더구나 현장 가방에는 달러 대신 7천만 원만 들어 있었고,
피고인이 “돈이 부족하다”고 항의한 정황도 없었습니다.
⑤ 거래 지시자에 대한 진술도 모순
E는 검찰에서 “필로폰을 받은 후 H에게 돈을 주라고 한 건 A씨였다”고 했다가,
법정에서는 “경찰이 ‘A씨를 믿을 수 없다’며
마약을 받은 후 제3자에게 주라고 했다”고 진술을 바꿨습니다.
법원은 이를 “일관성이 없는 진술”로 판단했습니다.
⑥ 포장 상태가 오히려 피고인에게 불리하지 않았다
압수된 필로폰은
‘I마트’ 봉지 안에 다시 ‘세브란스병원’ 비닐로 이중 포장돼 있었습니다.
5. 결론 — “범죄의 증명이 없다”
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따라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로 보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이 가방 안의 내용물이 필로폰이라는 사실을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E와 F의 진술은 서로 모순돼 신빙성이 없다.”
6. 판결의 의미 — “거짓 제보와 모순된 진술은 유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거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진술이 얼마나 신빙성 있게 입증돼야 하는가를 보여준 판례로 꼽힙니다.
법원은 “제보자의 신빙성과 증거의 객관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형사처벌은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명확히 했습니다.
“형사재판에서 의심은 가능하지만, 확신이 없다면 무죄로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