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인에게서 6년간 75번 돈을 빌린 피고인
피고인 A는 품질관리부서 선배였고, 고소인은 그의 부하 직원이었습니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피고인은 고소인에게 75회에 걸쳐 총 81,169,000원을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피고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식 투자로 수익 내서 갚겠다.”
“회사 퇴사 후 자금이 부족하다.”
“원금은 물론 수익도 얹어 갚겠다.”
표면적으로 보면
전형적인 장기 반복 사기 사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전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피고인이 처음부터 속일 의도(기망의사)를 가지고 돈을 빌렸다는 증거가 없다.
즉, 사기죄의 핵심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2. 핵심 쟁점 — “피고인은 처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는가?”
사기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을 빌릴 당시의 마음, 즉 기망의사입니다.
빌릴 당시 갚을 생각이 없었다면 → 사기
빌릴 당시 갚을 의사는 있었지만 나중에 경제적 사정으로 갚지 못했다면 → 민사 채무불이행
이 사건의 쟁점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3. 법원은 ‘사기 고의 없음’을 어떻게 판단했나?
1) 고소인은 피고인의 경제 상황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고소인은 피고인과
같은 회사 선후배
같이 근무한 사이
주식 투자 이야기도 공유하는 친밀한 관계
였습니다.
고소인은 피고인이
“주식으로 불안정한 수익을 내고 있는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즉, 피고인이 안정적 수입이 없다는 사실은
“거짓말로 감춘 내용”이 아니라 고소인도 알던 현실이었습니다.
2) 피해자는 ‘운영자금’보다 ‘높은 이자(연 20%)’를 보고 돈을 빌려줌
고소인의 수사기록·법정 진술을 보면,
피고인이 연 20% 이자 약속
고소인은 이를 듣고 동생 M에게도 대여를 권유
실제로 M은 피고인에게 2,000만 원 송금.
즉, 피해자는
“용도가 회사자금인지 아닌지”보다는
고금리 수익을 기대하며 돈을 빌려준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니 “용도 속임 → 착오 → 대여”라는 사기 구조가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3) 피고인은 실제로 일부 상환했다 (약 2,388만 원)
기록에 따르면 피고인은
2014년 4월부터 8월 사이
총 2,388만 원을 상환했습니다.
만약 처음부터 갚을 의도가 없었다면
이렇게 일부라도 꾸준히 상환하는 행동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법원도 이를
“초기에는 갚을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라고 판단했습니다.
4) 금액 중 일부는 ‘차용금’이 아닌 ‘투자위탁금’ 또는 ‘답례금’ 성격
고소인이 친구의 돈을 가져와 피고인에게 맡긴 금액
→ 피고인이 요청한 돈이 아니라, 고소인이 “불려달라”고 맡긴 ‘투자금’ 성격2018년 무렵 지급된 122만 원
→ 피고인 도움으로 큰 수익(2,000만~2,500만 원)을 낸 뒤 준 답례금 또는 지원금에 가까움
즉, 금전 수수 중 상당 부분은 애초부터 대여금 구조라고 보기 어려움.
5) 5,000원·1만 원 등 소액 차용까지 모두 ‘사기 범행’으로 기소된 점
범죄일람표에는
5,000원
10,000원
20,000원
34,000원
같은 극소액 대여까지 모두 “사기”로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5천 원, 1만 원을 빌릴 때까지 사기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기죄는 상식·경험칙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판단해야만 합니다.
6) 고소인의 진술은 일관되지 않고, ‘법률전문가 개입 흔적’이 강함
고소인의 진술은
시기마다 내용이 달라지고
변호사 작성 문구가 그대로 반복되는 등
“객관이 아니라 재구성된 주장”에 가까웠습니다.
법원은 이를 신빙성 낮은 진술로 보았습니다.
4. 결론 — 사기죄는 “의심”이 아닌 “명확한 증거”로 판단해야 한다
결국 법원은 다음처럼 정리합니다.
피고인이 용도를 속였다는 증거 없음
피해자는 고금리를 보고 대여
일부 금액은 투자금·답례금 성격
일부 금액은 상환됨
소액 대여까지 사기로 보기 어려움
고소인 진술 신빙성 부족
따라서:
“피고인이 처음부터 갚을 의사가 없었다고 볼 수 없음 → 사기죄 무죄”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번 사건은
‘약속에 의한 사기’ 판단 기준이 얼마나 엄격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돈을 빌리고 갚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처음부터 갚을 의사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가 그 거짓말 때문에 실제로 착오에 빠져 돈을 빌려줬다는 점이
명확하게 증명되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고소인의 진술은 객관적 근거가 부족했고,
금전 수수 대부분이 차용·투자·답례 등이 섞여 있어 사기 구조로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이 판결은 민사상 채무불이행과 형사상 사기는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의미 있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