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펀드매니저 친구가 있다. 정보가 먼저 온다.”
2018년 말, 피고인 A는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다.”
“내 친구는 미국의 큰 회사에서 펀드매니저다.”
“홍콩 세력과 연결돼 있어 정보를 미리 받는다.”
“한 달이면 두 배 수익 낸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트코인 비밀 정보망’ 이야기.
당시 시장 분위기를 생각하면, 귀가 솔깃해질 만한 말이었습니다.
피해자들은 실제로
B → 약 3비트코인
E → 약 3비트코인
총 6비트코인(당시 시세 약 3천만 원 상당)을 피고인에게 맡겼습니다.
겉보기에는 ‘전형적인 투자 사기’의 외형이 갖춰져 보입니다.
하지만 법원의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무죄.”
왜일까요?
2. 진짜 사건의 흐름 — ‘말은 과장됐지만, 돈은 건드리지 않았다’
1) 피고인은 과장을 했다. 하지만 ‘자기 돈처럼 쓰지는 않았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의 실제 투자 방식이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이 가입한 유료 텔레그램 정보방(H)에서 받은 정보에 따라
피해자들이 맡긴 비트코인을 그대로 마진거래에 활용했습니다.
즉, 피고인은 받은 비트코인을
출금해서 쓰거나,
도망치거나,
다른 데로 빼돌린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피해자 E 계좌의 비트코인은 단 1회도 인출된 적 없음
피해자 B의 비트코인을 맡아 거래한 피고인 계좌에서도
피고인이 개인적으로 낸 비트코인 범위 내에서만 출금됨
판결문은 이를 정확히 적시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은 비트코인을 위임 범위 내에서만 거래했을 뿐,임의로 사용한 정황이 없다.”
2) ‘비트코인이 사라진 이유’는… 시세 폭락
문제는 한 가지였습니다.
비트코인 시세가 폭락했다는 점.
피고인이 잘못해서 날린 것이 아니라 그 시기 시장 전체가 크게 흔들렸던 때였습니다.
피고인이 거래한 방식(공매수·공매도)은 수익과 손실의 폭이 큰 방식이기에
변동성이 커지면 코인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었죠.
즉, 피해자 입장에서는 “피고인이 사기쳤다”고 느낄 수 있지만
법적으로는 “위임한 대로 투자했는데 시장이 무너진 것”입니다.
3) 피해자들이 비밀번호를 알려준 건 ‘처분행위’가 아니다
피고인이 E에게서 계정과 비밀번호를 받은 사실은 맞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재산을 피고인에게 이전한 것’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계정 접근 권한을 준 것과
코인을 피고인 소유로 넘긴 것은 다른 문제
즉,
“비밀번호 전달 = 사기 처분행위” 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는 사기죄가 성립하기 위한 핵심 요소 자체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4) ‘편취 의도’의 증거가 없다
사기죄의 핵심은 단 하나입니다.
“애초부터 돈을 가져갈 마음이 있었는가?”
법원은 다음 근거로 편취 의도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피고인이 코인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증거 없음
송금·출금 기록 모두 정상
오히려 피고인은 일부 손실을 막기 위해 계속 거래 시도
피해자로부터 별도 수수료나 보상 약정도 없음
즉, 돈을 뺏을 목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투자를 잘못한 것”이라는 사실이 더 확실하다는 겁니다.
3. 결론 — 투자 실패는 민사 문제일 수 있어도, 형사 사기는 아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단호했습니다.
비트코인 폭락으로 손실이 발생한 것이지
피고인이 속여서 돈을 편취한 것이 아니다
시장 위험을 전적으로 피고인 책임으로 돌릴 수 없다
편취 고의, 기망, 처분행위 모두 입증되지 않음
따라서: “범죄의 증명이 없다 → 무죄”
형사재판의 원칙인 “의심만으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가 그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판결의 의미 — ‘투자 사기’와 ‘투자 실패’는 다르다
석원재 변호사
이 판결은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투자 실패가 곧바로 사기가 되지는 않는다.
과장된 말과 확정적 약속은 다르다.
상대방이 거래 계좌를 맡겼다고 해서 그 자체가 ‘재산 편취’는 아니다.
사기죄가 되려면 거짓말 + 처분행위 + 편취 목적이 모두 증명되어야 한다.
결국 이 사건은,
“비트코인으로 잃었다고 모두 사기로 몰 수는 없다”
는 법원의 기준을 다시 확인시켜 준 판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