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개요
새벽 시간, 해변 인근의 야외 테라스 술집.
A씨는 지인들과 술을 마시다가 일행 중 한 사람과 말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언성이 높아지고, 서로 밀치고 당기는 몸싸움으로 번지면서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테이블이 넘어가고
난간 쪽에 설치돼 있던 조명등(문주등)이 부서졌으며
주변에 앉아 있던 손님들 일부가 자리를 떠남
가게 사장은 영업에 방해가 됐다고 보고 경찰에 신고했고, A씨는 다음 두 가지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됩니다.
업무방해죄
소란과 몸싸움으로 손님들이 나가게 되어
가게 영업을 ‘위력’으로 방해했다는 혐의
재물손괴죄
가게 소유의 조명등을 파손했다는 혐의
하지만 결론은 업무방해죄·재물손괴죄 모두 무죄였습니다.
이 사건은 “술집에서 싸움이 나면 다 업무방해죄 아니야?”라는 고민에 기준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2. 사건의 쟁점
이 사건에서 법원이 따져 본 핵심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1) 재물손괴죄 – 조명등을 ‘고의로’ 깬 것인가?
재물손괴죄가 되려면 단순히 물건이 망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고의로’ 남의 물건을 손상시키려는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쟁점은,
“조명등을 깨려고 일부러 행동한 것인가?”
“아니면 몸싸움 과정에서 우연히 부딪혀 깨진 것인가?”
였습니다.
2) 업무방해죄 –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수준까지 갔는가?
업무방해죄에서 말하는 ‘위력’은 꽤 강한 개념입니다.
단순히 시끄럽게 하거나 불편을 준 정도를 넘어서
상대방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제압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힘을 의미합니다. (예: 폭행·협박, 집단 난동, 조직적 압박 등)
검찰의 주장은 대략 이렇습니다.
약 20분간 이어진 소란으로 손님들이 나갔고
그 결과 가게 영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으니
이는 ‘위력으로’ 가게 업무를 방해한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실제 상황이 그 정도 수준이었는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충분한지 따져보았습니다.
3. 법원의 판단
1) 재물손괴 부분 – “싸우다 밀려서 깨진 것 같다”
함께 술을 마셨던 일행, 그리고 가게 사장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습니다.
서로 멱살을 잡고 밀치는 과정에서
몸이 난간 쪽으로 밀리면서 조명등이 부서졌고
조명등을 잡아서 일부러 내던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는 취지
즉, 싸움 도중 몸이 밀려 조명등에 부딪혀 깨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법원은,
싸움 과정에서 조명등이 깨진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조명등을 일부러 파손하려 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조명등 파손은 우연한 결과일 수는 있지만,
재물손괴죄가 요구하는 ‘고의’가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는 이유로 재물손괴죄는 무죄로 결론 내렸습니다.
2) 업무방해 부분 – “소란 = 자동으로 업무방해는 아니다”
검찰은,
피고인의 소란으로 손님들이 나갔고
그로 인해 영업이 방해되었다며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성립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다음과 같은 사정을 주목했습니다.
소란의 대상
다툼과 몸싸움은 주로 일행끼리 벌어진 것이었고
사장이나 다른 손님을 직접 겨냥한 폭행·협박은 없었습니다.
사장의 진술
피고인은 상황을 오히려 말리려는 모습도 보였고
가게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하기도 했으며
심한 욕설을 한 사람은 피고인이 아니라 다른 일행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습니다.
영업 방해의 정도
일부 손님이 자리를 떠난 것은 맞지만
가게 영업이 완전히 중단되거나
사장·직원이 위협을 느껴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는 점이 구체적인 자료로 뒷받침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하여 법원은,
“이 사건 소란을 두고 ‘업무를 위력으로 방해했다’고 보기엔 부족하다.”
“업무방해죄 성립을 인정할 만큼의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고 판단해 업무방해죄도 무죄로 보았습니다.
4. 사건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1) 술집 소란이 모두 업무방해죄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서 싸우면 무조건 업무방해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사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단순한 말다툼
일행끼리의 몸싸움
일시적인 소란과 불편
만으로는 곧바로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가 된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업무방해죄가 되려면,
영업주나 손님에게 현실적인 위협과 압박이 가해지고
그로 인해 영업이 상당한 정도로 지장을 받은 정황이
증거로 분명하게 입증되어야 합니다.
2) 형사처벌의 기준 – ‘고의’와 ‘정도’
이 사건은 형사처벌에서 항상 중요한 두 가지 기준을 다시 확인시켜 줍니다.
고의 여부 (재물손괴)
물건이 파손되었다는 결과만으로는 부족하고
“일부러 그랬는지, 아니면 싸움 과정에서 우연히 그렇게 되었는지”가 핵심입니다.
위력의 정도 (업무방해)
소란이나 불편을 넘어
상대방의 의사결정을 제압하고
영업을 실질적으로 어렵게 만든 수준인지가 중요합니다.
3)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라는 원칙
형사재판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작동합니다.
“조금이라도 합리적인 의심이 남는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도,
“일부러 조명등을 깼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영업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위력을 행사했다”고까지 볼 수 있는지
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남는 이상, 무죄 판단이 내려진 것입니다.
5. 정리하며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점을 보여줍니다.
술자리에서 다툼과 몸싸움이 벌어지고
테이블이 넘어가고 조명등이 깨졌으며
일부 손님이 자리를 떠난 상황이라도
곧바로 업무방해죄·재물손괴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판단 기준은,
고의가 있었는지,
영업을 방해하려는 의도와 위력의 정도가 어느 수준인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얼마나 분명한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비슷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실제 사실관계와 증거 구성에 따라 결론은 전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사례는 “업무방해”라는 죄명이 생각보다 까다로운 요건 아래에서 인정된다는 점,
단순 소란과 형사처벌 사이에는 법적으로 생각해야 할 단계가 많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