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배경 — 산 중턱 개발공사와 유치권 분쟁
A씨는 한 토목공사업체의 대표였습니다.
이 회사는 산 중턱에 위치한 토지에서 토목공사를 진행했고, 공사대금이 일부 지급되지 않자 유치권을 주장하며 토지 점유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 토지는 경매로 새 주인을 맞았습니다.
새 소유자 측은 토지 개발을 위해 지질조사 등 공사를 진행하려 했고,
A씨와 새 소유자 사이에는 “누가 어느 범위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긴장감이 쌓여 있었습니다.
2. 검찰의 핵심 주장 — “공사차량 통행로를 막았다”
문제가 된 날은 어느 6월 아침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오전 8시 30분부터 11시 30분 사이에
토지로 들어가는 통행로 입구에 흙(보강토)을 쌓고 컨테이너를 올려 길을 막았습니다.
검찰은 이 통행로가 피해자 측 공사차량이 드나드는 길이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A씨의 행위는
“지질조사 등 공사를 못 하게 만들기 위해
공사차량 통행로를 봉쇄한 업무방해다.”
라는 논리로 공소를 제기했습니다.
3. 피고인의 주장 — “여긴 원래 공사차량이 못 다니는 산길이다”
A씨의 입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저 길은 원래 차가 다닐 수 없는 좁고 가파른 산길입니다. 공사차량이 드나드는 통행로가 아니었고, 제가 흙과 컨테이너를 둔 것도 유치권 점유를 분명히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즉,
애초에 그 길이 공사업무에 쓰이던 차량 통행로가 아니었고,
자신의 행위로 인해 피해자 측 공사업무가 실제로 방해될 여지도 없었다
는 주장이었습니다.
4. 법정에서 드러난 사실 — 통행로의 진짜 모습
재판에서는 “그 길이 정말 공사차량 통행로였는지”가 핵심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정에서 드러난 사실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새 소유자 본인조차 길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피해자 측 대표는“포크레인이 그쪽으로 올라갔다고 들은 적은 있다”고 했다가,
다시 “실제로 다닌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진술했습니다.길의 경사나 폭, 평소 용도에 대해서도 “직접 가본 적이 없어 잘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담당자들: ‘일반 차량은 못 들어온다’
피해자 측 개발 담당자는 “길이 좁고 경사가 져서 일반 바퀴 달린 차량은 통행을 못 한다”고 했고,
토지를 관리하던 다른 사람도 “폭이 좁고 경사가 심해 공사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사진으로 본 통행로의 상태
현장 사진을 보면, 이 통행로는 숲이 우거진 임야에 아주 좁게 나 있는 흙길에 불과했습니다.
오랫동안 차량이 다닌 흔적(바퀴자국, 도로 포장, 흙길 정비 등)도 거의 없었습니다.
실제 공사는 다른 진입로로 진행됐다
피해자 측은 반대편 도로 쪽에 펜스를 설치하고,
그쪽 출입문을 통해 사람과 공사장비의 출입을 통제·관리했습니다.수사 과정에서 피해자 측도
“결국 다른 진입로를 통해 공사장비 등을 출입시켰다”고 진술했습니다.
종합하면, 문제 된 산길은
실제 공사차량이 드나들던 주 출입로가 아니었고,
앞으로 그렇게 사용될 예정이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길이었습니다.
5. 법원의 판단 — “업무방해 결과도, 위험도 인정하기 어렵다”
법원은 먼저, 이 산길을 “공사차량 통행로”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부터 따졌습니다.
그 결과,
경사가 심하고 폭이 매우 좁은 점,
현장 담당자들조차 “차량 통행이 안 된다”고 진술한 점,
차량이 다닌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점,
실제 공사도 반대편 도로 쪽 다른 진입로를 통해 진행된 점 등을 고려해
“이 산길을 피해자 측 공사업무를 위한 공사차량 진입로로 보기는 어렵다.”
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공사 차량이 실제로 막혔다고 보기 어렵고,
다른 진입로를 통해 공사가 진행된 점을 보면
공사업무에 어떤 결과나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즉,
길을 막는 행위 자체는 있었지만,
그로 인해 업무가 현실적으로 방해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 통행로 관련 업무방해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같은 사건에서 다른 날짜에 있었던 별도의 방해행위 부분은,
유치권 행사와 관련된 정당행위 내지 착오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아
역시 무죄가 유지되었습니다.)
6. 판결의 의미 — “길을 막았다고 모두 업무방해는 아니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업무방해죄의 “한계선”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유치권 주장하면서 산길을 흙과 컨테이너로 막았다 → 공사방해 아닌가?”
라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업무방해죄가 인정되려면,
정말 그 길이 해당 업무에 쓰이던 통행로인지,
그 길을 막음으로써 업무에 현실적인 방해 결과나 최소한의 위험이 있었는지
이 두 가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합니다.
“단순히 길을 막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로 그 길이 업무에 쓰이고 있었고,
그 길이 막혀 업무에 지장이 생길 현실적 위험이 있어야
비로소 업무방해죄가 문제될 수 있다.”
토지·건축·개발 현장에서 유치권 행사, 출입 제한, 통행로 분쟁이 벌어지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형사상 업무방해가 성립하는지 고민된다면,
이 사건을 기준으로 업무와의 직접적인 관련과 현실적인 방해 위험을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