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배경 — 단 한 줄기 진입로, 그리고 우사 신축공사
한 농촌 마을에 우사(소 축사)를 새로 짓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토지 소유자는 축사 건축신고를 마치고, 시공업자와 수억 원대 공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공사기간은 약 두 달 반 정도로 정해져 있었고
기간을 넘겨 완공하지 못하면 하루마다 공사대금의 0.03%를 지체상금으로 물어야 한다는 조항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진입로가 단 하나라는 점이었습니다.
우사 신축부지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차량 1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의 농로뿐이었고, 이 도로가 막히면 공사차량과 자재 차량은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마을 주민인 A씨는 이 우사 신축공사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악취·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주민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검찰의 이야기 — “트랙터로 도로 양끝을 막아 공사를 방해했다”
검찰이 그린 사건의 그림은 단순합니다.
우사 신축공사에 불만을 품은 A씨가
공사현장으로 통하는 진입로 양끝에 트랙터 두 대를 세워
공사차량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고,
같은 방식의 도로 봉쇄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는 것입니다.
검찰은 이 행위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보았습니다.
공사차량·장비의 진입이 차단되면
자재 반입, 콘크리트 타설, 시공 일정이 모두 꼬이게 되고계약상 지체상금 부담까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도로를 봉쇄한 행위는 공사업무의 집행을 직접 방해하는 행위라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재판부도,
이런 형태의 도로 폐쇄가 있었다면 업무방해죄 구성요건상 ‘업무방해의 결과·위험’은 충분하다고 전제합니다.
3. 법원이 인정한 사실 — “길이 막히면 공사는 실제로 방해된다”
우선 법원은 업무방해의 ‘객관적 측면’은 인정했습니다.
우사 공사는 일정 기간 내에 완공하지 못하면
상당한 지체상금을 부담해야 했고공사 현장은 그 도로 하나로만 차량 출입이 가능한 구조였으며
도로 양끝을 트랙터로 막아 두었다면
공사차량과 자재의 반입이 현저히 곤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법원도,
“이 도로의 폐쇄로 인해 공사장비·자재 반입이 곤란해졌고,
공사업무는 객관적으로 방해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
고 판단했습니다.
즉, ‘이런 식의 도로 봉쇄는 일반론적으로 업무방해에 해당한다’는 점 자체는 부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4. 그럼에도 무죄 — “도대체 누가 트랙터를 세워놨는가?”
하지만 문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 도로를 막은 사람이 과연 A씨라고 볼 수 있느냐”는, 행위자 특정의 문제였습니다.
① 처음에는 ‘누가 했는지 모르는 주민’만 있었다
공사업자는 처음 경찰에 고소할 때,
“마을 주민이 도로를 막아 공사가 어렵다”고 호소하면서도
정확히 누가 그 행위를 했는지는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수사기관이 현장을 조사했을 때도,
여러 차례에 걸친 도로 봉쇄 중
일부 트랙터의 소유자만 겨우 특정했을 뿐,
나머지는 소유자 파악조차 되지 않았고,
실제로 누가 운전해 트랙터를 가져와 세웠는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즉, “도로가 막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행위자를 누구라고 볼지에 대해서는 공백이 있었던 것입니다.
② 나중에서야 “집회 주최자가 피고인이라길래…”
그러던 중 공사업자는 경찰로부터
“이 도로 일대 집회 신고의 주최자가 A씨”라는 설명을 듣게 됩니다.
이후 공사업자는 처음에는 ‘신원 불상의 마을 주민’을 피고소인으로 적어 냈다가,
나중에야 A씨를 특정해서 고소인 진술을 변경합니다.
하지만 법원이 보기에는,
이 과정은 어디까지나 “집회 주최자 = 도로 봉쇄 행위자일 것이라는 추측”에 불과했습니다.
집회 신고를 주도했다고 해서
그 이전에 있었던 도로 봉쇄 행위까지 모두
A씨가 지시·실행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③ 집회 신고 시점과, 공소사실 시점이 엇갈린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시점입니다.
A씨가 트랙터 시위 등과 관련해
경찰에 옥외집회 신고를 한 것은 12월 중순 이후였고검찰이 공소제기한 업무방해 도로 봉쇄 행위는 11월 17~27일 사이의 일로 특정되어 있었습니다.
즉,
공소사실에 적힌 도로 봉쇄는집회 신고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행위이고
A씨가 인정하는 것은 “집회 신고를 했다”는 사실뿐이며
이 둘을 직접 연결해 줄 만한 연속된 행위의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④ 사진 한 장으로는 부족하다
증거 가운데에는
도로 인근에서 촬영된 사진 한 장이 있었고,
그 사진 속 인물이 “A씨로 보이는 사람”이라는 점은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사진 한 장만으로
① 트랙터의 소유자가 피고인이라고 단정하거나,
② 피고인이 직접 운전해 도로를 막아놨다거나,
③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해 트랙터를 세워두게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트랙터가 도로를 막고 있었던 사실,
A씨가 공사를 반대하며 집회 신고를 한 사람이라는 정황만으로는
공소사실에 적힌 개별 도로 봉쇄 행위의 “행위자 = A씨”라는 점을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법원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5. 판결의 의미 — 핵심만 정리
행위 자체는 업무방해가 될 수 있다
공사현장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도로를 트랙터로 막았다면, 그 자체로는 공사차량 통행을 차단하는 전형적인 업무방해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그래도 ‘누가 했는지’ 입증 못 하면 무죄
이 사건에서 쟁점은 법리가 아니라 행위자 특정이었습니다. 트랙터가 도로를 막고 있었다는 사실, 피고인이 공사를 반대해 왔다는 정황만으로는
“트랙터를 세운 사람 = 피고인”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입니다.정황과 추측만으로는 유죄 불가
형사재판에서 업무방해죄를 인정하려면“업무방해가 되는 행위가 있었는지”와
“그 행위를 바로 이 피고인이 했는지”
두 가지가 모두 증명돼야 합니다.
이 사건은 업무방해로 의심되는 상황이 있어도, 행위자 입증이 부족하면 무죄라는 원칙을 다시 확인해 준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