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개요 — “계약이 끝나던 날, 장비를 가져간 팀장”
이 사건은 한 아파트의 통합경비시스템 용역 계약이 바뀌는 날 발생했습니다.
아파트와 기존 경비업체(B)의 계약은 3년간 유지되다가 종료되었고,
새로운 업체(C)가 입찰을 통해 선정되면서 7월 1일부터 새 계약이 시작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바로 그날 아침, 기존 업체 B의 팀장이었던 A씨는
아파트 정문 관제소 등에 설치된 모니터 17대, 녹화장치 17대를 철거해 가져갔습니다.
아파트 측은 이 장비들이 “아파트의 자산”이라며 즉시 항의했고,
결국 다음 날부터 차례로 장비를 돌려받았습니다.
그러나 아파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A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1개월 동안 CCTV 녹화 공백이 생겼고,
그 사이 차량 손괴사건이 발생해 원인 규명에 차질이 생겼다.”
는 주장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A씨의 입장은 단순했습니다.
“저는 장비가 우리 회사 것이라고 믿었고,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반출해도 된다고 승낙을 받았습니다.”
결국 쟁점은 A씨가 장비의 소유를 알고 있었는지, 반출이 고의적인 업무방해였는지,
그리고 정말 위력을 행사한 것인지였습니다.
쟁점 1 — 장비가 누구 것인지 피고인이 알고 있었는가?
아파트 측은 장비들이 모두 원래 업체 B가 아파트에 기부한 자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즉, 업체 소유가 아니라 아파트 소유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A씨는 계약 종료 며칠 전부터 지속적으로 관리사무소에 장비 소유 여부를 문의했습니다.
“이 장비들 중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
“설치된 장비들이 회사 것인지, 아파트에 인수된 것인지 확인해달라”
그러나 관리소장은 “알아보겠다”고만 하고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사건 당일, A씨는 다시 관리소장을 찾아가
“이 장비들은 오래돼서 새 업체가 쓰지 못할 텐데, 가져가도 되느냐” 라고 묻자,
“그렇게 하세요.” 라는 답을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즉, A씨는 회사 자산이라고 믿고 있었고,
또한 관리소장의 승낙까지 받았다고 믿은 상황이었습니다.
법원은 이 진술을 배척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쟁점 2 — 관리소장의 ‘승낙 여부’는 왜 중요한가?
아파트 관리소장 D씨는 법정에서 “그런 허락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이 부분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만약 승낙한 사실이 밝혀지면 관리소장이 책임을 지게 되는 상황
관리소장은 다른 진술에서는 “장비가 아파트 자산인지 몰랐느냐고 물으니, A씨가 몰랐다고 했다”고도 말함
“인수받을 것이 별로 없다”고 말해 사실상 장비 철거 가능성을 인정한 듯한 진술도 존재
즉, 관리소장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동기가 있어 보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승낙이 있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법원은 평가했습니다.
쟁점 3 — 정말 아파트의 ‘업무’가 방해되었는가?
아파트는 “CCTV 녹화 기능이 한 달간 중단되어 차량 손괴사건 해결에 차질이 생겼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했습니다.
① A씨가 위력을 사용한 흔적 없음
장비를 철거할 때 물리적 충돌이 없었고,
아파트 측의 제지도 없었음
② 장비가 곧바로 다시 반납됨
철거 다음 날부터 순차적으로 전체가 반환됨
장기간 업무 공백을 초래하려는 행동으로 보기 어려움
③ ‘고의’가 입증되지 않음
오히려 장비 소유 관계를 지속적으로 문의해온 정황
관리소장의 묵인 또는 승낙이 있었을 가능성
착오나 업무 미숙으로 인한 반출 가능성도 존재
즉, 업무방해죄에는 필수적인 ‘방해 의도’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판결 — “고의도, 위력도 없다” → 무죄
결론적으로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A씨가 장비를 가져간 것은 업무방해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위력 행사도 없었고,
오해에서 비롯된 착오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따라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판례의 의미 — “착오·소통 오류가 형사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공사·경비·시설관리 같은 현장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장비 철거”, “인수인계 착오”가 형사처벌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기준을 분명히 제시합니다.
장비 반출이 있더라도 소유관계 오해 또는 승낙 여부가 불분명한 경우에는 고의 인정이 어렵다.
업무방해죄는 실제 방해, 또는 방해하려는 의도가 명확히 입증되어야 한다.
현장 상황에서의 의사소통 부족이 형사처벌의 근거가 될 수 없다.
결국 이 사건은 “의도적 방해”와 “착오로 인한 오해”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 판례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