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개요
2016년 2월 아침 8시, 서울 영등포 사거리.
출근 차량으로 붐비는 도로 위에서 소형 레이 차량을 운전하던 A씨(피고인)는
앞차인 택시가 갑자기 차선을 바꾸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순간, A씨는 본능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뒤따르던 택시도 급제동했습니다.
잠시 후 두 차량은 정차했고,
A씨는 차에서 내려 “왜 그렇게 운전하십니까!”라며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곧 ‘보복운전’ 사건으로 번졌습니다.
검찰은 A씨가 화가 나서 고의로 급정거를 해 피해자를 위협하고,
택시 승객 3명에게 상해를 입혔다며
특수상해 및 특수협박죄(형법 제258조의2, 제284조)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의 주장: “화가 나서 고의로 급제동했다”
검찰은 블랙박스 영상 속 A씨의 욕설과 급정거 장면을 근거로
그의 행동이 ‘우발적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보복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 택시의 갑작스러운 차선 변경에 화가 나,
앞을 가로막고 급제동하여 피해자를 위협했습니다.
또한 그 충격으로 택시 승객 3명이 목과 허리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즉, 단순한 급브레이크가 아니라 ‘자동차를 이용한 위협 및 상해행위’라는 논리였습니다.
피고인의 항변: “당황해서 브레이크 밟은 겁니다”
A씨는 재판 내내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택시가 갑자기 끼어들어 중앙선까지 넘어가 피했어요.
다시 차선을 돌아오며 교차로 신호를 확인하려고 급히 멈춘 겁니다.
협박할 생각도, 일부러 멈춘 것도 아닙니다.”
A씨는 키 190cm, 체중 120kg 였는데
소형차(레이)를 운전하면서 시야가 좁아 신호등을 바로 확인하기 어려웠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즉, “신호를 보기 위해 멈춘 상황이었지, 보복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법원의 판단: “욕설은 흥분의 표현일 뿐, 협박의 증거 아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제12형사부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사건을 심리했습니다.
배심원 7명 모두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① 피고인의 급제동은 놀라움·당황에서 비롯된 행위였다
피고인은 택시의 급차선 변경을 피하기 위해 이미 중앙선을 넘어갔다가 복귀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시야 확보가 어려웠고, 신호를 확인하기 위해 급히 멈춘 것으로 보였습니다.
즉, “위협의 의도”보다 “당황한 반응”에 가까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② 욕설은 ‘분노 표현’이지 ‘위협 의사’는 아니었다
블랙박스에는 피고인이 “미친 새끼, 돌았나 이게”라고 혼잣말로 내뱉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운전 중 놀란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튀어나온 말로 보일 뿐,
상대에게 공포심을 주려는 협박으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③ 택시기사의 진술은 ‘추측’에 불과했다
피해자 택시기사는 “피고인이 보복하려고 멈춘 것 같다”고 진술했지만,
법원은 ‘추측성 진술’이라며 증거로서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승객들의 진술도 “갑자기 멈췄다”는 정도로,
고의성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④ 피고인의 체격·차량 크기 등 운전 조건도 고려
피고인의 체격(키 190cm, 체중 120kg)과 차량의 크기(소형 레이)를 고려하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 급히 멈출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보았습니다.
즉, 피고인의 운전 환경 자체가 사고의 개연성을 뒷받침했습니다.
결론: “보복운전이 아닌, 놀란 운전자의 본능적 반응”
결국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상해를 가할 의사로 급제동을 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
라고 판시하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운전자의 감정적 표현이 곧 협박이 아니다’라는 중요한 판단을 내린 사례입니다.
또한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7명 전원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이 내려진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건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운전 중 감정 표현이 형사사건으로 오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법원은 감정적 욕설이나 급제동이 있더라도,
그 행위가 ‘상대에게 공포심을 주려는 명확한 의도’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즉, ‘보복운전’의 핵심은 감정이 아니라 의도라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