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증만 서줘, 바로 갚을게”… 겉보기에는 사기 같은 상황
피고인 A는 오랜 지인인 B와, 또 다른 지인 G에게 여러 차례 돈을 빌렸습니다.
검찰이 문제 삼은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B에게
“C에게 1,000만 원을 빌려야 하는데 보증을 서 달라”고 부탁했고,
B는 이를 믿고 보증을 서줬습니다.피고인은 G에게 수차례 돈을 빌리며
“동생에게 200만 원 갚아야 한다”
“누구에게 돈을 줘야 한다”
“식당 이전 보증금이 필요하다”
“계원에게 돈 줘야 한다”
등의 이유를 말하며 총 1,962만 원 상당을 현금으로 받아갔습니다.
겉으로 보면 “이유를 둘러대며 반복적으로 돈을 받는”
전형적인 차용 사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항소심은 전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 핵심 쟁점 — “돈을 빌릴 당시, 갚을 의사가 없었는가?”
사기죄는 다음 두 가지가 입증되어야 성립합니다.
피고인이 거짓말을 했다
그 거짓말을 믿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돈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돈을 빌리는 사건에서는
“차용 당시 변제 의사·능력”이 있었는가가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이 두 요건 모두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3. 법원이 무죄라고 본 이유
1) B에게서 실제로 받은 돈은 200만 원뿐
검찰은 “피고인이 B에게 거짓말하여 보증을 서게 했다”고 주장했지만,
피해자는 보증만 섰을 뿐
실제 피고인이 받은 금액은 200만 원
나머지 800만 원은 B가 스스로 가져간 외상대금 상계액
피고인은 이자와 일부 원금(110만 원)도 변제
따라서 B 사건은
“보증을 속여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렵다.
2) G에게 돈을 빌릴 당시 ‘변제능력이 없었다는 증거 부족’
기록을 보면, 피고인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2016년 수입 11,967,700원
2017년 상반기 수입 10,860,000원
을 신고했습니다.
소규모 식당 특성상 신고되지 않은 현금매출도 상당할 가능성이 있어
변제능력이 완전히 없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또한,
피해자 G의 남편이 식당 영업에 방해를 해 매출에 타격
그로 인해 변제가 지연된 정황도 존재
즉, 변제를 못한 이유가 고의적 사기 때문인지 불가분한 상황인지 불분명했습니다.
3) 차용 당시 기망행위를 인정할 구체적 증거 없음
사기죄가 되려면
“이 말을 믿지 않았다면 피해자는 절대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것”
이라는 판단이 성립해야 합니다.
그러나 G와의 관계를 보면
친분이 깊었고
반복적인 거래 관계였으며
실제로 일부 이자도 지급
되어 왔습니다.
즉, 피해자가 피고인의 말을 철저한 검증 아니라, 신뢰 관계에 기초해 빌려준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는 사기죄에서 말하는 ‘기망에 의한 착오’의 구조와 다릅니다.
4) 검찰은 피고인에게 ‘거짓말 의도(기망의사)’를 입증하지 못함
변제 후에도 반복적으로 빌린 사실이 있더라도,
차용 당시 피고인이 “기망 의도로 거짓말했다”는 직접 증거 부족
빚을 갚지 못한 것이 결과일 뿐, 처음부터 속이려 했다는 입증 없음
즉, 이 사건은 민사상 채무불이행의 영역에서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4. 결론 — 사기죄 무죄
위 모든 사정을 종합해 법원은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립니다.
“피고인이 돈을 빌릴 당시 변제의사나 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증거 부족 → 사기죄 무죄”
형사재판에서는
의심이 아닌 증명이 기준이며,
합리적 의심이 남으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판결의 의미
석원재 변호사
이번 사건은 차용금 분쟁과 사기죄는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돈을 갚지 못했다고 해서 모두 사기죄가 되는 것이 아니며,
피고인이 처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다는 점이 명확히 증명되어야만 사기죄가 성립합니다.
또한 친구·지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반복적 금전거래에서는
상대방의 형편과 변제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단순한 변제 실패를 형사적 책임으로 연결하면
민사 분쟁을 과도하게 형사화하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판례는 “민사상 채무불이행과 형사상 사기는 다르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의미 있는 판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