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건의 배경 — 학원을 떠나기 직전 벌어진 일
A씨는 서울 관악구에 있는 B씨의 ‘D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원장 B씨와 갈등이 커지면서, 결국 학원을 그만두기로 합니다.
문제가 된 날은 2021년 2월 14일 오후 3시 30분경.
A씨는 학원 교무실에 있던 업무용 태블릿 PC를 사용해, B씨 명의로 로그인되어 있던 온라인 저장공간에 접속합니다.
그곳에는 결석한 학생들이 보충수업을 위해 보던 학원 강의 동영상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A씨는 그중 일부 동영상 파일을 임의로 삭제했습니다.
이 일로 A씨는 업무방해죄(형법 제314조 제1항)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2. 검찰의 핵심 주장 — “동영상 삭제는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다”
검찰은 사건을 이렇게 봤습니다.
A씨는 학원과 다투고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뒤,
학원 운영에 필요한 강의 동영상 파일을
피해자 B의 ID가 로그인된 태블릿으로 들어가 고의로 삭제했다.
“피고인은 위력으로 피해자의 학원 운영 업무를 방해하였다.”
라는 내용으로 업무방해죄를 적용했습니다.
1심 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 주어, A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유죄).
하지만 A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항소심으로 올라갑니다.
3. 피고인의 주장 — “위력도 없었고, 업무 방해도 없었다”
A씨는 항소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교무실 문을 잠근 것이 아니라 그냥 닫았을 뿐이다.”
“몸을 밀치거나 얼굴을 치는 등 폭행이나 심한 위력 행사는 없었다.”
“삭제한 동영상은 결석한 학생들의 보충용인데, 이미 학생들이 시청을 마친 뒤라 학원 운영에 아무 지장이 없었다.”
“따라서 업무방해의 위험 자체가 없었다.”
또한, 동영상의 저작자는 자신이므로 “저작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삭제도 아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다만, 항소심의 무죄 판단은 주로 ‘위력’과 ‘업무방해 위험’에서 갈립니다).
4. 법정에서 드러난 증언의 붕괴
① 피해자 진술 vs 경찰·동행인 진술
원장 B씨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A씨가 학원에 들어오자마자 고성을 지르고,
자신의 몸을 밀치거나 프린트물로 얼굴을 치고,
교무실로 들어간 뒤 문을 잠가 자신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의 진술은 달랐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언쟁은 있었지만, 업무방해·폭행으로 볼 정도의 위력은 없었다.
A씨가 교무실 문을 닫기는 했지만, 잠근 적은 없었다.
A씨가 B씨를 밀치거나 얼굴을 때리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또, A씨와 함께 학원에 온 F씨도 법정에서
A씨는 교무실에서 인수인계 관련 작업을 하고 있었고,
오히려 B씨가 경찰에게 항의하며 A씨의 작업을 방해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즉, 피해자 진술과 경찰·동행인 진술이 충돌했습니다.
② CCTV 영상 부재
학원 교실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복도나 교무실 주변에도 CCTV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말로 몸을 밀치고, 프린트물로 얼굴을 치고,문을 잠가 못 들어가게 했다면,CCTV 영상으로 쉽게 입증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B씨는 어떠한 CCTV 영상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 점을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낮게 보았습니다.
③ “피해 본 학생이 있다”지만 누구인지도 특정 못함
B씨는 원심에서,“삭제된 동영상을 봐야 할 학생이 J, K 말고도 더 있었는데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학생이었는지 끝내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이유로 이 부분 진술 역시 신빙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④ 실제 수강 기록 — 이미 학생들은 동영상을 다 봤다
기록을 확인해 보니, 문제된 동영상은 대상 학생들의 시청이 끝난 상태로 이 동영상을 시청했어야 할 다른 학생이 있었는지, 기록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삭제 당시에는 사실상 동영상의 역할이 끝난 상태였던 것입니다.
5. 법원의 판단 — “위력도, 업무방해 위험도 인정하기 어렵다”
항소심 법원은 먼저 업무방해죄의 ‘위력’ 개념부터 다시 짚었습니다.
위력이란 사람의 자유로운 의사를 제압하거나 혼란시키는 힘이고,
반드시 폭행·협박일 필요는 없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의사결정이 제약될 정도의 세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판례 인용).
그 기준을 이 사건에 적용해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폭행·고성 부분
경찰과 동행인 진술, CCTV 미제출 등을 종합하면
→ 피해자 진술만으로는 위력 행사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동영상 삭제 자체가 위력인가?
단순히 온라인 공간에서 파일을 삭제했다고 해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되거나 혼란에 빠졌다고 보긴 어렵고,그 자체만으로 ‘위력 행사’라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항소심은,
“피고인의 행위로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볼 증거가 없다.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라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6. 판결의 의미 — “업무방해죄, 어디까지가 처벌 범위인가”
석원재 변호사
이 사건은 업무방해죄의 한계를 잘 보여주는 판례입니다.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단순한 갈등·불쾌감 ≠ 곧바로 업무방해죄
다툼이 있었다고 해서, 민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곧바로 형사상 업무방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업무방해죄의 요건
상대방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거나 혼란시킬 정도의 위계·위력, 그리고 업무가 실제로 방해될 만한 현실적 위험 이 두 가지가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이 판결은,
“증거가 불안정하고, 실제 ‘업무방해 위험’도 없다면
업무방해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
는 점을 분명히 확인해 준 사례입니다.